“4년 전 ‘의대증원’ 반대한 폐암환자가 전공의 등 돌린 이유는”
  • 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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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군인이 ‘나랑 안 맞다’고 총 버리는 꼴”
“4년 전, ‘더는 환자 곁 떠나지 않겠다‘고 전공의와 약속했는데 또다시 파업”
3월6일 오후 김포시 고촌읍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이건주 한국폐암환우회 회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3월6일 오후 김포시 고촌읍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이건주 한국폐암환우회 회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전공의 집단행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에도 정부와 의사는 의대 증원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였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10년간 매년 의대 정원을 400명씩 늘리고, 지방 공공의대를 설립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문 정부의 계획은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당시 이건주 한국폐암환우회장(78)은 본인의 치료가 시급한 상황에서도 의사를 지지하는 집회에 참여해 연대사를 했다.

그러던 그가 4년이 흐른 뒤, 또다시 같은 일이 벌어지자 이번엔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며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2016년 폐암 4기 판정을 받고 지금껏 124번의 항암치료를 받은 이 회장은 2월19일 거친 목소리로 전공의 복귀를 호소하는 유튜브 영상을 올렸다. 폐암 환자인 이 회장이 전공의 편에 섰다가 4년 만에 등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 회장은 3월5일 시사저널에 “25년간 암 환자로 살아오면서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큰 혜택을 받고 잘 훈련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았다”며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생각하면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환자들은 지금도 사경을 헤매고 있고,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며 “삶의 막바지에서 이번 사태를 보면서 간곡하게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2024년 전공의 집단 휴진을 어떻게 봤나.

“전공의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직업 선택권’을 운운하던데, 그럴 거면 처음부터 의사가 되지 말았어야 한다. 군인이 되겠다고 직업군인을 선택해놓고 막상 전쟁에 나가 ‘나랑 안 맞는 것 같다’고 총을 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의사가 환자를 떠나지 않겠다는 ‘제네바 선언’은 다 잊은 것 같다.”

2020년에는 의대 증원에 반대했었다. 마음을 돌린 이유는.

“4년 전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의사 수요가 늘었다. 저출산으로 인한 도농 격차도 심각해지고 있다. 의사 수를 늘려 지역별·과목별로 골고루 분포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4년 전 의사를 지지하는 연대사를 했을 때, 한 전공의가 쫓아와서 ‘오늘 말씀 잘 들었다’, ‘말씀하신 대로 좋은 의사 되겠다’고 감동적인 인사를 건넸다. 그때 ‘다시는 환자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는데 또다시 파업 카드를 꺼내든 게 안타깝다.”

이건주 한국폐암환우회장이 2020년 8월 의사들이 주최한 ‘2020 젊은의사 단체행동’에 참석해 연대사를 하고 있는 모습 ⓒ이 회장 블로그 캡쳐
이건주 한국폐암환우회장이 2020년 8월 의사들이 주최한 ‘2020 젊은의사 단체행동’에 참석해 연대사를 하고 있는 모습 ⓒ이 회장 블로그 캡쳐

가쁜 숨소리와 거친 목소리로 전공의 집단 휴진을 반대하는 영상이 화제가 됐는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의협 행동이 국민에게 ‘밥그릇 싸움’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020년 파업 성공의 전례를 발판 삼아 의사들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또 선배들의 싸움에 편승하는 젊은 지식인을 향한 대중의 실망과 배반이 드러났다고 본다. 이 모든 싸움의 총대를 전공의에게 매도록 만든 의협이 가장 나쁘다.”

정부가 강경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 대응은 어떻게 보나.

“결국은 정부의 ‘협상 능력’에 달렸다. 협상의 기본은 ‘기브 앤 테이크’인데, 정부가 전공의에게 어떤 당근을 주고 있는지 잘 안 보인다. 사태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의협과 전공의를 품고 완전한 협상을 해야 한다. 힘없고 고통받는 환자들이 다시는 정부와 의료계의 볼모가 되는 행태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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