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93% 병원 떠났다…의대 교수 “승패 문제 아냐, 대화하자”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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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병원 100곳 미복귀 전공의 1만2907명 달해
서울의대 교수 “의·정 갈등 중재자 無…국회 무책임”
의사인력 추계 전문가들 “사회적 합의체 마련 필수”
전공의 집단 이탈이 일주일 이상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월27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연합뉴스
전공의 집단 이탈이 일주일 이상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월27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연합뉴스

전공의 집단 반발이 본격화 된 지 18일 째. 1만2000명에 육박한 의사가 가운을 벗었다. 현장에 남은 의료인들은 한계 상황에 직면했고 환자 불안감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스승’이자 ‘선배’인 일부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 복귀를 독려하며 환자 곁에서 해결 방안을 찾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 수순을 밟고 있지만 8일 현재까지 가시적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날 오전 11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 1만2907명에 대한 근무현황 점검 결과 92.9%인 1만1985명이 계약을 포기하거나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대 증원 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간 합의점 도출이 요원한 가운데 일각에선 “일단 복귀한 뒤 함께 논의하자”고 호소가 이어진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소속 두 교수는 전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의사수 추계 연구자 긴급 토론회’에 참석해 “환자가 눈에 밟히는 전공의들이 분명히 있는 것을 안다. 일단 병원에 돌아와서 하나씩 이야기 해보자”며 전공의들을 설득했다.

홍윤철 서울의대 교수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의정 두 주체가 이제는 자리에 앉아 대화를 시도할 때”라며 “둘 중 하나의 승패를 가리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신중하게 의사결정 해주길 당부했다. 홍 교수는 “굉장히 큰 책임을 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보다 진지하게 현 사태를 직면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적어도 (전문가들의) 의사 수 추계 연구보고서를 꼼꼼히 읽어보고 진짜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심도 있게 고민한 뒤 행동해 달라”고 조언했다.

이어 “전공의와 의대생 모두 한국 의료체계를 발전시킬 훌륭한 자원”라며 “부디 주체적으로 행동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소모적인 ‘편 가르기’식 논쟁이 의정 간 대립을 극대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주환 서울의대 교수는 “정부와 의료계 간 신뢰가 없으니 각자 합당한 주장을 해도 서로 듣지도, 이해하지도 않는다. 결국 설득력도 떨어진다”며 “이 문제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오 교수는 “그러다보니 국민도 중재자 역할보단 편 가르기만 할 수 밖에 없는 상태”라고 꼬집었다. 가령 그는 “일각에선 의사 수를 늘려 ‘번아웃’을 막아준다는데 의사가 왜 반발하느냐고 비판한다. 그러나 인력이 많아질수록 대체 가능성이 높아져서 전공의 임금은 줄고 노동 강도는 오히려 더 강화된다”고 했다. 이어 “전공의가 반발하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본인을 ‘복귀하고 싶은 전공의’라고 소개한 작성자가 집단행동 불참에 따른 ‘낙인’이 두려워 복귀를 망설이고 있다는 사연이 올라왔다.

이에 의료인 댓글 작성자 중 대다수는 “소신대로 행동하시길 바란다”, “3~4년 후 본인의 의사생활을 돌아봤을 때 부끄러움 없는 의사가 되길” 등 반응을 보이며 “병원으로 돌아오시면 좋겠다”고 독려했다.

전공의 집단 이탈 일주일째인 2월26일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119 구급대가 위급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공의 집단 이탈 일주일째인 2월26일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119 구급대가 위급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 중재 역할 안 해…직무유기 수준”

의료계는 현 사태를 매듭짓기 위해선 중재와 타협을 통한 점진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 교수는 “현 상황에서 국회는 가장 중요한 중재자 역할도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위원회를 포함해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며 “21대 국회 임기도 곧 끝나는데 너무 무책임하다”고 힐난했다.

오 교수도 “전공의가 마음을 열고 현장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언론, 그 누구든 나서서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긴급 토론회에 참석한 의사 수 추계 연구자들도 소통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의 근거가 됐던 의사 수 추계 과정에서부터 사회적 협의체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의료 선진국 모습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미국과 일본, 네덜란드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의사수 추계를 전문기관을 두고 연구하며 의료계는 당연히 참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은 병원 관계자와 개원의, 전공의뿐만 아니라 각 지역 의대 교수들까지도 참여해 정확하고 과학적인 추계를 위해 논의한다”며 “국민과 언론, 인구관련 전문가,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신영석 보건사회연구원 명예위원도 “(의대 증원의 근거가 되는) 추계는 기존 시스템이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상정된다. 따라서 정책, 수요와 공급 등 변화로 과다 추계도 과소 추계도 가능하다”면서 “정확한 시장상황을 예측하는 게 어려운 만큼 거버넌스를 구축해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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