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홍콩 ELS 배상안…원만한 ‘분쟁 조정’ 가능성은?
  • 정윤성 기자 (jy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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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 책임 가이드라인 제시한 금융당국…금융권은 고심
“예상보다 배상 강도 강해” VS “상당히 후퇴한 배상안”
수용해도 제재 관건…수조원 과태료에 강경대응 나서나

금융당국이 홍콩 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해 분쟁조정기준안을 내놓은 가운데 이번 배상안이 새로운 논란의 불씨가 될지 관심이 주목된다. 배상안을 두고 판매사, 소비자 간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기나긴 법적 다툼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또한 분쟁조정절차와 제재도 남은 만큼 당국과 금융권의 진통도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홍콩 H지수 연계 ELS 대규모 손실 관련 분쟁조정기준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홍콩 H지수 연계 ELS 대규모 손실 관련 분쟁조정기준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0~100% 차등 배상…금융권 셈법 복잡

11일 금융감독원은 홍콩 H지수 ELS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다. 금감원은 현장 검사에서 기준안을 판매 원칙 위반이 확인된 판매사 별로 20~40%의 기본배상비율에 개별 투자자 사례에 따라 일정 비율을 방식으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배상비율은 최소 개별 사례를 바탕으로 0%에서 최대 100%까지 다양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감원에서 배상기준안을 마련함에 따라 판매 금융사들도 배상안에 대한 시뮬레이션 등 본격적인 검토에 착수한 모양새다. 그간 판매사들은 ELS 판매 규모가 큰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대형 로펌을 섭외해 자문을 구하는 등 대응을 준비해 왔다. 다만 개별 투자 사례가 천차만별인 만큼 판매사별 자율배상안이 결정되기 까진 장고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투자 고객과 사례가 많은 데다 배상안 내용에서 따져볼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닌 만큼 법률이나 여러 종합적인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며 “배상안이 나온다 해도 이사회나 절차상 거쳐야 하는 부분까지 고려하면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어려운 단계”라고 말했다.

배상안에 더해 이복현 금감원장은 판매사 자율배상에 따른 제재 감경 등 ‘당근책’을 다시 한 번 제시했다. 이 원장은 앞서 지난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도 제재 감경 발언을 한 바 있다.

이 원장은 이날 “판매사는 자율적으로 배상(사적화해)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며, 고객 피해 배상 등 사후 수습 노력은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과징금 등 제재 수준 결정시 참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판매 금융사들은 여전히 자율배상에 대해선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자율배상에 따른 배임 문제도 여전할 뿐만 아니라 예상보다 기준안의 배상 강도가 강하다는 이유다. 투자 사례별로 1~2가지의 가점 요인만 있어도 평균 40~50%를 배상해야 하는 것에 비해 차감 요인은 까다롭다는 설명이다. 금감원은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 책임이 종합적으로 반영되도록 했다는 입장이지만, 배상안 공정성을 두고 진통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금융권은 상생금융 집행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29일 우리은행은 민생금융 지원방안의 일환으로 총 2758억원 규모의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11일 금융감독원은 홍콩 H지수 ELS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DLF 땐 자율배상 수용…과징금엔 강경 태세

배상안은 발표됐지만 판매사들은 향후 법적 절차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 논란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금감원은 내달 중으로 피해 대표사례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개최해 분쟁조정 절차에 들어간다. 그러나 판매사와 소비자 중 어느 누구라도 분조위의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배상 문제는 법정 공방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에 더해 과징금과 제재 문제도 걸려있다. 앞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금융당국은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 등을 근거로 하나·우리은행에 대해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업무정지와 과태료 168억원, 197억원을 각각 부과했다.

당시 하나·우리은행은 금융당국의 분쟁조정절차를 수용하는 동시에 자율배상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제재에 대해선 이의제기와 행정소송을 장기간 벌인 바 있다.

행정소송의 결과는 은행의 승리였다. 금융사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을 근거로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를 통보받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대법원에서 최종 징계 무효 판결을 받았다.

손 전 회장과 같은 사안으로 ‘문책경고’를 받은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당시 하나은행장)은 지난달 29일 금융당국을 상대로 징계를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당국은 오는 14일까지 상고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후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제정됨에 따라 판매 원칙 위반에 대해선 수입의 5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 산술적으로 시중은행 판매액이 15조40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최대 7조원 가량의 과징금이 매겨질 수 있는 셈이다. 당국은 자율배상에 따른 제재 감경을 내세우면서도, 불완전판매에 대해선 엄중히 처벌하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1월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법적 공방 장기화 될 수도”…배상안 후폭풍 어디까지

이에 더해 일괄배상을 외쳐온 소비자들까지 강하게 반발하면서 갈등 봉합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과거 DLF 사례와 비교해도 배상비율이 쪼그라든 가운데, 불완전판매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오는 15일 ELS 불완전판매를 규탄하는 3차 집회를 연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과거 DLF 사태 등에 비해 배상 비율이 차감될 기준과 요인은 확대된 반면, 가점 요인은 쪼그라든 상당히 후퇴한 배상안”이라며 “상대적으로 배상비율이 높게 책정될 고령층이나 취약계층 이외의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법적 공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 사이에선 금융당국이 자율 배상을 압박해온 만큼, 판매사의 자율배상안도 기준안에 준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소비자들과의 법정 공방에 대해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은행별 배상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과거 DLF 당시 판매사와 소비자들 간 법적 다툼까지 이어진 사례가 적었고 그나마도 소비자들이 승소한 경우가 거의 없는 만큼 판매사들도 이러한 부분을 인지하고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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