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과일 수입은 되고 사과는 안 된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8 11:00
  • 호수 1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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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경제연구원 “온난화 등으로 사과 재배면적 매년 1%씩 감소”
일부에선 수입 자유화 주장하지만 현실적 한계도

1920년생인 김형석 교수가 아침에 꼭 챙겨 먹는 것이 달걀과 사과라고 한다. 누구나 달걀과 사과만 먹으면 김 교수처럼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루 사과 한 개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사과의 효능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사과에 들어있는 칼륨은 뼈를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고, 유기산은 몸속 피로 물질을 줄여준다. 사과의 식이섬유는 혈관에 쌓이는 나쁜 콜레스테롤(LDL)을 몸 밖으로 내보내 혈관병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그 몸에 좋다는 사과가 요즘 금값이다.

지구온난화와 자연재해, 고령화 여파로 사과 생산량이 줄면서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사진은 충북 충주의 한 과수원에서 사과를 수확하는 모습 ⓒ연합뉴스

우리 농촌 현실 보여준 사과값 폭등

통계청의 2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과일류의 가격 흐름을 나타내는 신선과실은 41.2% 급등했다. 32년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특히 사과는 1년 전과 비교해 무려 71%나 급등했다. 지난 1년 새 두 배 가까이 가격이 뛴 셈이다. 치솟은 사과 가격은 다른 과일 가격을 올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값비싼 사과 대신 수요가 몰리면서 귤 소매가격은 사과보다 더 뛰어 1년 전보다 78% 올랐다. 정부는 급한 대로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등 수입 과일에 부과하던 관세를 면제해 수입을 늘리겠다는 과일 가격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물론 이건 사과를 찾는 수요는 채울 수 없는 방법이다.

사과값이 뛴 건 지난해 생산량이 1년 전의 56만6000톤에서 30% 감소한 39만4000톤에 그쳤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와 자연재해 때문이었다. 3월의 이상 고온에 이어 갑자기 냉해가 발생해 피해가 컸다. 여기에 여름철에는 집중호우, 수확기에는 병충해까지 발생했다. 심지어 우박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수천ha의 과수원이 초토화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온갖 악재가 겹친 한 해였다.

사과의 가격 변동은 생산 주기인 1년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저장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올해 햇과일 출하 전까지 가격이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통 과정을 개선할 수 있다면 조금 나아지기는 하겠다. 사과의 유통 비용은 소비자가격의 절반이어서 다른 주요 농산물의 유통 비용보다 높다. 사과는 보통 수확되고 나면 생산자단체인 영농조합법인을 거쳐 도매시장 그리고 소매상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소수의 도매법인이 독점적인 수탁권을 가지고 경매에 참여해 사실상 가격을 좌우한다.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자리를 잡아 이해관계자가 많은 구조를 바꾼다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당장 고쳐서 빠른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일부에서는 수입 자유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현재 사과 수입은 동식물 위생·검역 조치(SPS)에 따라 금지돼 있다. 외국산 사과를 수입하면 국내에 병해충이 유입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다양한 과일을 수입하고 있다. 다른 과일은 수입해도 문제가 없는데, 사과만 병해충 유입이 우려된다면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진짜 이유는 국내 사과 재배농가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사과 재배면적은 지난해 기준 2만4687ha로 과일 재배면적 가운데 가장 넓다. 사과 수입으로 인한 농가의 타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과일과 달리 저장성이 좋은 과일이라는 점도 수입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수입이 허용되지는 않고 있지만 ‘후지’를 제외한 미국산 사과 품종의 관세는 이미 2021년 철폐됐다.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수입 사과가 싼값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일 수 없다. 아무래도 국내시장을 영구적으로 잠식당할 염려가 크다. 수입이 본격적으로 허용되면 국내 사과 생산의 30%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상황이 급하다고 바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사과 수입을 위해 11개국과 검역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거쳐야 할 절차가 있다. 모두 8단계의 ‘수입위험분석(Import Risk Analysis)’을 통과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 수입위험분석을 신청한 11개국 가운데 미국은 3단계인 예비위험평가에 머물러 있다. 가장 많이 진행됐다고 하는 일본도 겨우 5단계인 위험관리방안을 만들고 평가하는 정도까지 와 있다.

서두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위험 정도를 평가하고 이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는 거쳐야 한다. 조건도 갖추지 않고 검역조치를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수입농산물에서 병원균과 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차단할 인력과 장비, 시스템이 준비돼야 하고, 수출국의 병해충 상황과 생산 시스템을 감시하고 점검할 수 있는 역량도 필요하다.

 

무작정 사과 검역조치 완화도 안 돼

근본적으로 국내 사과의 안정적인 생산을 뒷받침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이건 아쉽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사과 농사도 농촌 인구 감소와 기후변화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업 경영주의 43%가 70세 이상이고, 농림어업 취업자의 66%가 60세 이상이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우리 농촌의 일손 부족은 고질적이다. 앞으로 10년 사이에 농업 경영주의 절반이 은퇴하면 현 수준의 농업 생산을 유지하는 것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6만㏊에 달하는 농지가 휴경되고, 장기 휴경으로 폐경에 이르는 면적도 매년 7000여㏊에 달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충격은 일상적인 일이 돼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 농촌을 힘들게 했던 폭우나 폭염, 이상 저온 같은 일들은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빨간 사과의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다. 사과는 다른 과일과 달리 햇빛을 직접 받아야 착색되는 과일이다. 사과나무 토양 표면에 햇빛이 반사되는 은박 반사필름을 깔아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과의 착색은 항산화 물질 가운데 가장 탁월한 효과를 낸다는 안토시아닌(anthocyanin)의 양에 의해 결정되는데, 기온이 낮에는 20~25도, 밤에는 15~18도 정도로 떨어졌을 때 잘 생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온난화로 밤 기온이 올라가면 사과 색깔이 빨간색으로 변하지 않고 녹색인 채로 남아있게 된다.

결국, 온난화의 영향은 사과 재배 지역의 북상으로 이어진다. 사과의 주산지인 대구와 경북 지역의 재배면적이 특히 줄고 있다. 올해의 가격 급등 덕분에 한동안은 재배면적 감소가 주춤하겠지만 기본적인 추세는 바뀌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사과 재배면적은 지난해 기준으로 3만3800㏊ 정도였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앞으로 연평균 1%씩 재배면적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온난화가 지금 같은 추세로 계속된다면 2100년에는 한반도에서 사과 재배가 아예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최소한 강원도 이남에서는 사과 재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기후위기는 현실이고 우리 농업은 지금 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까지 겹친 우리 농촌은 그 현실이 더 무겁다.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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