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강자 롯데의 새 승부수 배터리·바이오 사업 ‘올인’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9 07:30
  • 호수 179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세 신유열 전무 앞세워 제조업으로 그룹 체질 개선 시도…속도에서 축적 경쟁 나선 롯데의 변신 성공할지 주목

유통산업의 1차 대전이 쿠팡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쿠팡은 지난해 연매출 31조8298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 또한 6174억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같은 기간에 유통의 자존심으로 불렸던 이마트는 29조4722억원의 매출을 찍었고, 롯데쇼핑은 14조5559억원에 그쳤다. 쿠팡에 밀린 신세계는 그룹 차원의 비상경영을 선언했다. ‘용진이형’으로 불린 정용진 부회장이 회장에 취임하며 재도약 준비에 나섰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전무(가운데)가 1월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의 롯데정보통신 부스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롯데가 ‘탈유통’을 외치는 까닭

신세계그룹이 정용진 회장의 취임을 계기로 ‘유통 명가’ 재건에 나서기로 결심한 데 비해 롯데그룹은 정반대 노선을 선택했다. 과거 오프라인 유통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출혈경쟁도 마다하지 않던 롯데는 최근 들어 롯데마트 매장 수를 오히려 31% 줄이는 등 예전과 다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국내 1위 슈퍼마켓 지위를 놓고 GS리테일과 경쟁하던 양상과는 다른 모습이다. 변화의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롯데마트는 선두 이마트 따라잡기를 내려놓고 효율성 위주의 재편에 들어갔다. 롯데하이마트 역시 부실 점포 정리에 나섰다. H&B(Health & Beauty) 시장에서 CJ올리브영과 경쟁하던 롭스의 경우 코로나19 시기에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자 사업을 완전 철수했다. 롯데그룹 입장에서 유통 명가, 유통 패권을 내려놓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롯데는 ‘탈유통’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 이유를 읽을 필요가 있다.

롯데그룹의 4대 핵심사업은 유통, 식품, 화학, 호텔이지만 고객에게 친숙한 분야는 유통이다.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쇼핑이란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그러나 해당 브랜드의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오프라인 영역이란 점이다. 기성세대에게는 친숙하나 코로나19 이후 전환된 디지털 관점에서 보면 올드한 플랫폼이다. 그 결과, 고객 그리고 시장은 여전히 롯데를 오프라인 유통공룡으로 읽는다.

변화를 위한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롯데그룹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4월 통합온라인몰 ‘롯데온’을 출범시켰다. 롯데그룹의 유통 계열사 7개의 데이터를 통합한 온라인 쇼핑플랫폼을 말한다. 롯데온의 목표는 2023년까지 온라인 매출 20조원을 달성하는 것. 성과는 어땠을까. 롯데온의 2023년 매출액은 1351억원에 그쳤고, 영업손실은 856억원으로 늘어났다. 이커머스 시장 성장률을 롯데온은 따라가지 못했다.

롯데그룹의 고민은 깊어졌고 부진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누군가는 사소한 홈페이지 오류를 언급했고, 누군가는 온라인 전략의 방향성 부재를 질타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대형 온라인 업체 인수를 권했고 여성 임원의 확대 필요성을 롯데에 요구했다. 처방은 제각각이나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롯데그룹의 문화가 디지털로 대변되는 속도보다 오프라인 축적에 좀 더 익숙하다는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롯데는 고민의 시기에 방향성을 재조정했다. ‘타도 쿠팡’을 외치며 정용진 회장을 필두로 새로운 세계를 다시 한번 만들겠다는 신세계와 달리 롯데는 자신들의 조직문화에 좀 더 적합한 사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도출된 분야가 바로 바이오와 배터리다. 대규모 설비투자가 요구되고 오랜 기간의 기술 축적과 집중이 요구되는 분야다. 쿠팡, 네이버와의 속도 경쟁에서 탈피해 새로운 도전에 롯데는 모험을 걸었다.

그룹의 변화가 요구된 시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아들인 신유열 전무가 롯데지주의 미래성장실장에 선임됐다. 말 그대로 롯데의 미래와 신성장동력을 책임지는 자리다. 유통과 식품에서 벗어나 바이오와 배터리 등 중후장대 산업에 도전하는 것은 새로운 사업에서 성과를 낸 후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아 경영 승계로 나아가겠다는 로드맵과 일치한다. 롯데는 이를 위해 서비스업에서 제조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3월1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경 ⓒ
3월1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경 ⓒ시사저널 박정훈

롯데가 선택한 제조업, 필요한 건 인내자본

유통, 더 나아가 면세점, 호텔 등 서비스업에선 트렌드 포착과 고객만족을 위한 신규 서비스 출시 등 속도전이 생명이다. CJ올리브영이 옴니채널 전략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공략하고 있고 쿠팡, 네이버 등 이전에 롯데가 상대하지 않았던 신규 경쟁자는 로켓배송보다 더 빠른 속도전으로 롯데를 압박했다. 신세계의 SSG닷컴, 롯데온의 대응은 역부족이었다. 롯데의 조직문화도 속도와는 맞지 않는다. 롯데는 전력을 재정비했다. 자신들의 조직문화와 가장 적합하고 오랜 시간 공들여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 발을 들여놓았다. 롯데그룹이 2조7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일진머티리얼즈는 롯데의 신사업 방향성을 상징한다. 이 회사는 전기차 배터리 소재를 만드는 기업이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에 롯데는 사상 최대 금액을 올인했다. 배터리 투자와 함께 롯데헬스케어와 롯데바이오로직스 법인도 설립했다.

롯데는 바이오 분야에도 수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롯데에 유통과 식품은 단기적으로는 달콤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장잠재력에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면, 바이오와 배터리는 단기적으로는 엄청난 금액이 소요되지만 성장할 수만 있다면 장기적 관점에서 그 가치, 잠재력은 무한하다. 기업의 가치도 얼마나 많이 버느냐에서 얼마나 많은 잠재력을 지녔느냐로 바뀐 지 오래다.

물론 걸림돌이 없는 건 아니다. 바이오와 배터리는 엄청난 기술력이 필요하고 첨단기술을 쌓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이를 참고 이겨낼 수 있는 인내자본이 요구된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이 바이오와 배터리에 관심을 갖는 건 그만큼 인내자본과 상당한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축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해당 산업은 1%의 가능성을 얻기 위해 99%의 자본과 인력을 투자해야 하는 인내의 영역이다.

롯데는 속도 경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쿠팡과의 대립이 중요하지 않다고 선언했지만 롯데가 선택한 장치산업은 축적 경쟁을 위해 4대 그룹 및 글로벌 기업과 맞서야 하는 훨씬 고난도의 분야다. 유통산업은 진입장벽과 철수장벽이 낮아 출구전략이 용이하지만 장치산업은 진입장벽과 철수장벽이 높아 출구전략도 쉽지 않다. 롯데는 베팅을 했다. 얼마나 인내하고 축적할 수 있을지가 승부의 관건이 될 것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