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철 염장이 “명당 기운 받는 것보다 후회 없이 사는 지금이 더 중요”
  • 김경수 기자 (2k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5 13:00
  • 호수 179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독 인터뷰] 1000만 관객 앞둔 《파묘》 ‘유해진’의 실제 인물 유재철 대통령 염장이

2월22일 개봉한 영화 《파묘》가 누적 관객 800만 명을 돌파했다. 1000만 관객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많을 정도로 압도적인 흥행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파묘》는 무당과 법사가 나오는 한국의 무속신앙과 풍수사, 장례지도사 등 토속적인 요소들이 한데 묶여 제작돼 관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영화는 이들이 한 부잣집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하는 도중 생기는 기이한 사건을 담아냈다. 전반부에서는 전형적인 ‘오컬트’(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초자연적 현상) 미스터리가 펼쳐지다가, 후반부에서는 한반도 역사와 얽힌 이야기가 나온다.

고인의 유해가 있던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을 ‘파묘’라고 한다. 시체를 ‘염습’(시신을 목욕시킨 후 옷가지와 이불 등으로 감싸는 일)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염장이’다. 영화 속 주인공 중 한 명인 장례지도사 ‘고영근’(배우 유해진)의 실제 모티브가 된 인물이 유재철씨다. 올해로 30년을 맞은 유씨. 고(故) 최규하,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등 전 대통령들의 마지막 배웅을 책임진 대한민국 대표 ‘대통령 염장이’다. 

3월11일 서울 용산구 시사저널 스튜디오에서 ‘대통령 염장이’ 유재철 대한민국장례문화원 원장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3월11일 서울 용산구 시사저널 스튜디오에서 ‘대통령 염장이’ 유재철 대한민국장례문화원 원장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배웅’

3월11일 오후 3시쯤 시사저널 용산 스튜디오에서 만난 ‘염장이’ 유재철씨는 영화 《파묘》 장재현 감독을 만나게 된 계기부터 영화 속 화제를 모은 에피소드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4~5년 전, 유씨는 장 감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평소 좋아하던 배우 유해진씨가 영화에서 자신(장례지도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흔쾌히 승낙했다. 장 감독은 유씨의 일터를 자주 찾아 장례를 치르는 과정과 산소일 등을 직접 체험하고 배웠다. 영화를 향한 장 감독의 적극적인 모습에 유씨는 많이 놀랐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 감독과 배우 김고은, 유해진 등은 기독교와 천주교 교인임에도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뛰어난 연출과 신들린 연기를 선보여 많이 놀랐다는 후일담도 전했다.  

영화 속에서 묘를 파는 모습을 보면, 가족과 일꾼들이 파묘 전 “파묘요”를 크게 외친 후 무덤을 파기 시작한다. 가족들이 먼저 “파묘요”를 세 번 외치며 상주가 삽으로 산소를 두드린 후, 동서남북으로 한 삽씩 떠서 떼어놓는다. 이후 일꾼들이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파묘요”를 외치는 이유를 묻자 유씨는 “산소에 할아버지든, 할머니께서 계시니 놀라지 마시라는 뜻으로 외치는 것”이라며 “망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화제가 된 장면이 있다. 파묘 후 풍수사 ‘상덕’(배우 최민식)이 묫자리에 100원짜리 동전을 던지는 모습이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파묘 후 왜 동전을 던지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씨는 “묘지를 잘 썼으니 (산신에게) 드리는 일종의 사용료”라고 대답했다. 이어 유씨는 “원래는 10원짜리 3개를 던진다. 장 감독이 실제로 파묘하는 현장을 찾아왔을 때 10원짜리 동전 3개를 던지는 모습을 봤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10원짜리가 땅의 ‘흙색’과 비슷한 까닭에 표시가 안 나 100원짜리로 바꿔 던진 걸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 《파묘》에서는 땅속에 또 다른 관이 묻혀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스토리가 극적으로 전개된다. 첩장은 한 묫자리에 여러 개의 관이 중첩돼 묻히는 것을 말한다. 유씨는 실제로 파묘 현장에서 첩장을 발견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종종 있다고 전했다. 큰돈을 번 재벌집이나, 유명인 등의 묫자리 옆에 간혹 첩장이 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명당 기운을 받고자 다른 사람 묘에 자신의 조상을 모신다는 발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유씨는 “3년 전쯤 국내 10대 재벌집 의뢰를 받고, 집안의 할머니 산소를 팠다. 3~4m 폭으로 2m 정도 깊게 파니 옆 흙이 쓰러지면서 다른 관이 딱 나왔는데 깜짝 놀랐다. 누군가 명당 기운을 받으려고 할머니 관 인근에 묻은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영화 촬영장에서 파묘 작업에 대해 설명하는 유재철 염장이 ⓒ쇼박스 제공
영화 《파묘》에서 유재철 염장이를 모티브로 한 고영근 역을 연기한 배우 유해진(오른쪽) ⓒ쇼박스 제공

‘한국 국가장’ 주제로 박사 된 무형문화재

고(故) 노무현, 김영삼, 법정 스님, 여운계 등 대통령과 유명인 등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유씨는 우연한 계기로 장례 업계에 발을 들였다. 어린 시절, 유씨의 아버지는 항아리 장사와 쌀집을 운영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서 전역한 유씨는 지역 유지인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크게 벌였다가 사업 자금을 모두 탕진했다. 당시 아파트 2채 값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이후 학원을 운영해 보고, 형이 운영하던 무역회사에서도 일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위해 서울 안암동 고려대 뒤쪽 ‘개운사’를 찾아 함께 기도를 드렸다. 그게 인연이 됐다. 자연스레 ‘대한불교청년회’에 가입하고, 1994년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전국불교청년대회'에 참가했다. 그곳에서 만난 청년회원 2명이 유씨에게 “상조회사를 만들고 3년 만에 큰돈을 벌었다”면서 염습을 배워볼 것을 권했다. 유씨는 가족에게 비밀로 하고 주말마다 광주로 내려가 염습을 배웠다. 그의 나이 36세 때다. 당연히 주변의 반대는 무척 심했다. 유씨는 “당시 큰딸이 4세였다. 친구, 선배, 후배들이 나중에 딸 시집을 어떻게 보낼 거냐면서 적극 만류했지만, 사회적 편견에 맞서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유씨는 “시신을 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예로부터 집안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가족이 직접 염을 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불교와 인연을 맺으며 시작된 염장이 인생. 유씨는 1996년 6월25일 고(故) 일붕 서경보스님 입적한 날, 처음으로 큰 장례를 맡았다. 7일장에는 수많은 조문객이 몰렸다. 염습하는 내내 잦은 실수들로 인해 스님들로부터 지적을 받았지만, 성공적으로 염을 마쳤다. 이후 큰스님들이 입적할 때마다 유씨는 지극 정성으로 염을 하며,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면서 입소문을 탔다. 이후 유씨는 고(故) 최규하,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등 전 대통령들과 이맹희 CJ 명예회장 그룹장을 주관했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장례 때는 ‘엠바밍’(사체영구보존 기술) 과정에도 참여했다. 법정 스님을 비롯해 큰스님들의 다비도 470여 차례나 봉행했다. ‘한국 국가장’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유씨는 중요무형문화재 111호 사직대제 이수자다. 2017년에는 ‘대한민국 전통장례명장 1호’에 선정되기도 했다. 

유재철 염장이가 고(故) 김대중 대통령 국장, 김영삼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 국가장을 진행하고 있다(왼쪽부터). ⓒ
유재철 염장이가 고(故) 김대중 대통령 국장, 김영삼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 국가장을 진행하고 있다(왼쪽부터). ⓒ연합뉴스·대한민국 장례문화원 제공

“죽음을 공부해야 삶이 깊어진다”

30년간 유씨의 위로(염습)를 받으며 떠난 고인은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에 머물던 불법체류 노동자, 무연고자부터 최고 권력의 대통령과 스님, 재력가, 유명인에 이르기까지 족히 4000명이 훌쩍 넘는다. 이를 통해 얻은 교훈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다짐이다. 유씨는 “(우리는) 내일이 오는 걸 당연한 줄 알고 살아가지만,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죽음이란 단어를 입에 담기조차 꺼린다. 어떤 죽음을 맞고 싶은지, 나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하길 바라는지, 죽음 직전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등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다. ‘죽음’은 살아있을 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주제라는 게 유씨의 지론이다. 죽음을 공부해야 삶이 깊어진다. 죽는다는 걸 의식하면 하루하루가 소중해진다고 한다. 유씨는 “30년이나 이 일을 할지 정말 몰랐다. 당시엔 사회 분위기상 친구에게 말도 못 했다”며 “지금은 유족들이 고인의 마지막 배웅을 잘해 드려 참 고마워하니 보람도 있고, 자부심도 느낀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유씨는 “고인이 누구든 마음을 다해 염을 하는 게 내 일이다. 고인을 생전 모습처럼 모시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갈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