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수리업체에 팔린 ‘K수제맥주’…제주맥주, 왜 무너졌나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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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손실 2년 연속 100억원 이상·주가도 뚝뚝…희망퇴직까지 진행
주류시장 판도 변해…수제맥주 지고 위스키·데킬라 부상
업계 ‘1호 상장사’ 경영권 매각에 수제맥주 시장도 긴장

수제맥주 1호 상장사인 ‘제주맥주’의 경영권이 매각된다. 제주맥주는 국내 수제맥주 시장을 선도하며 ‘신화’를 썼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속되는 영업적자와 바뀐 주류 트렌드 앞에서 좌초하고 말았다. 제주맥주를 안게 되는 회사는 자동차 수리·부품 유통업체인 더블에이치엠이다. ‘K수제맥주’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제주맥주의 상장이 ‘사실상 실패’로 결론나면서, 수제맥주 시장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제주맥주의 제주 금능농공단지 공장 생산시설에서 캔맥주가 생산되는 모습 ⓒ연합뉴스
제주맥주의 제주 금능농공단지 공장 생산시설에서 캔맥주가 생산되는 모습 ⓒ연합뉴스

지역성 기반으로 시장 이끌었지만…9년간 적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제주맥주는 최대 주주 엠비에이치홀딩스와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이사가 보유한 주식 864만 주와 경영권을 101억5600만원에 더블에이치엠에게 매각하기로 했다. 1주당 가격은 1175원이다. 전혀 다른 분야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데다 3년이 채 되지 않은 업력을 지닌 회사가 제주맥주 인수에 나서면서, 앞으로의 향방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2015년 설립된 제주맥주는 2017년 출시한 제주위트에일, 제주펠롱에일 등으로 수제맥주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제주’라는 지역성을 기반으로 홈런을 쳤고, 국내 4대 편의점에 전 제품을 입점시키면서 시장을 선도했다. 서울과 부산 등지에 팝업스토어까지 열면서 MZ세대에게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고,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홈술 문화’의 수혜도 봤다. 제주맥주가 성공하자 전국 각지의 ‘로컬 수제 맥주’가 출시되기도 했다.

제주맥주는 ‘사상 첫 수제맥주 상장사’라는 타이틀을 보유한 기업이다. 적자 기업이라도 미래의 성장성을 고려해 상장을 허용하는 제도인 일명 ‘테슬라 요건(이익 미실현 기업 상장 특례)’으로 2021년 5월 증시에 입성했다. 매출을 늘려가며 외형적 성장은 이뤘지만 수익성 개선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시장의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제주맥주는 2023년 1148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흑자 규모를 219억원까지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제주맥주는 결국 9년 동안 한 번도 영업이익을 내지 못했다. 2022년부터 영업손실 규모는 100억원을 넘겼고,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6.2% 줄어든 224억원에 그쳤다. 목표 매출의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적이다. 지난해 제주맥주의 영업손실은 109억원에 달했다. 상장 후 5000원 안팎에 달했던 주가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올해 초에는 800원대까지 내려앉은 바 있다.

제주맥주는 제주맥주 최대 주주 엠비에이치홀딩스와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이사가 보유한 주식 864만 주와 경영권을 101억5600만원에 더블에이치엠에 매각하기로 했다.
제주맥주는 제주맥주 최대 주주 엠비에이치홀딩스와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이사가 보유한 주식 864만 주와 경영권을 101억5600만원에 더블에이치엠에 매각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희망퇴직까지 단행…‘콜라보’로도 실적 개선 실패

악화되는 실적을 이겨내지 못한 제주맥주는 지난해 전체 임직원 40%에 대한 희망퇴직을 단행했고, 대표이사도 회사에 급여를 모두 반납한 바 있다. 제주맥주는 수제맥주 시장에서 인기를 끈 곰표의 상표권을 보유한 대한제분과의 협업을 통해 실적 개선 승부수를 던졌지만, 유의미한 판매 기록을 쓰지 못했다. 최후의 카드로 고려했던 ‘외식업 진출’도 좌초됐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수제맥주가 ‘대세’이던 주류 시장의 분위기도 달라진 점도 제주맥주의 부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홈술 문화에 기반해 몸집을 키우던 수제맥주 시장은 엔데믹으로 전환되면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2020년 120.7%에 달했던 수제맥주 매출 증가율은 2021년 63.1%로 크게 줄었고, 2022년에는 11%대로 떨어졌다. 주류 시장에서는 와인이 부상하더니, 위스키, 데킬라 등이 유행의 바통을 이어 잡았고, 현재는 이를 활용한 ‘믹솔로지(술과 음료 등을 섞어 만든 칵테일 또는 그 문화)’ 트렌드가 주류 시장을 관통하고 있다.

수제맥주 시장을 급격하게 성장시켰던 ‘이색 콜라보’의 수명도 길지 않았다. 소비자의 단기적 흥미를 이끌면서 매출을 늘렸지만, 수제맥주들이 ‘본질적 장점’이 아닌 ‘흥미’에 초점을 맞추면서 ‘한탕주의’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해외에서 고품질 수제맥주가 꾸준히 사랑받는 것과 달리, 국내 수제맥주들은 품질과 맛의 차별화보다 ‘대형화’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제주맥주에 이어 업계 2위 회사인 세븐브로이 역시 실적에서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결국 제주맥주가 받아든 ‘실패’라는 성적표가 업계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일부 수제맥주 회사들은 최근 유행하는 하이볼 등으로 제품 라인업의 무게 추를 옮기면서 활로를 찾고 있다.

더블에이치엠이 제주맥주를 어떻게 운영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 공개된 바 없다. 내달 15일 중도금이 지급되면 최대주주가 변경된다. 제주맥주 경영권은 오는 5월8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에서 더블에이치엠이 지정한 이사 및 감사를 선임한 뒤 더블에이치엠에 완전히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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