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검찰도 마크롱 정부와 한판 전쟁 중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7 16:00
  • 호수 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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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정계 거물들 향한 전방위적 수사 몰아붙여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극한 대결이 한 달째 이어지는 한국처럼 프랑스 정치권에도 검찰발 회오리가 불고 있다. 여야, 좌우를 막론하고 정계 거물급 인사들이 줄줄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프랑스 시사주간 르 주르날 드 디망쉬는 “검찰이 정치권에 선전포고를 한 것인가”라고 보도했다.

최근 불어닥친 프랑스 검찰의 수사 광풍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실비 굴라르 전 국방부 장관이다. 9월10일 굴라르 전 장관은 파리 근교 부패범죄수사대(OCLCIFF)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혐의점은 유럽의회 의원 시절 직원 위장취업 의혹이다. 그런데 소환 사유와 함께 무엇보다 시점이 석연치 않다. 굴라르 전 장관은 이미 같은 사안으로 2017년 장관직에서 물러났으며, 그사이 4만5000유로의 횡령금액도 상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검찰의 소환장이 날아든 날은 마크롱 대통령으로부터 유럽연합(EU) 집행위원으로 지명된 날이었다. 시점이 고약했던 것이다. 여권의 한 고위 인사는 언론을 통해 “검찰이 대놓고 정권을 자극하는 것인가”라며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프랑수아 몰린 프랑스 검찰총장 ⓒ AP 연합
프랑수아 몰린 프랑스 검찰총장 ⓒ AP 연합

마크롱 “검찰, 독립의 대상 아닌 관리의 대상”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3일 뒤, 이번엔 프랑스 하원의장이자 마크롱 대통령의 최측근인 리샤르 페랑이 ‘부패 혐의’로 전격 기소됐다. 현 프랑스 정부의 권력서열 4위인 하원의장이 수사 대상이 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페랑을 필두로, 일주일간 유력 정치인들에 대한 프랑스 검찰의 수사가 줄을 이었다. 파트릭 발카니(71·르발루아 페레 시장), 프랑수아 바이루(68·전 법무부 장관, 중도정당 모뎀(Modem) 당수), 장 마리 르펜(91·전 국민전선 당수), 장 뤼크 멜랑숑(68·극좌 정당 프랑스 앵수미즈 당수), 니콜라 사르코지(64·전 대통령) 등이 현재 검찰의 수사선상에 있는 정치인들의 면면이다. 주요 혐의점은 위장취업(프랑수아 바이루), 공금횡령(장 마리 르펜) 등 금전거래와 관련된 의혹들이다.

검찰의 칼날은 과거 우파 정권 실세에게까지 향했다. 현재 우파 공화당(LR)의 뿌리인 공화국연합(RPR) 시절부터 시라크의 최측근이며, 전 사르코지 대통령과도 각별했던 발카니 시장이 재판정에서 전격 구속된 것이다. 발카니는 프랑스 우파의 터줏대감 같은 존재였다. 탈세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25년 넘게 끌어왔지만 어떠한 처벌도 피해 왔다. 이번 법정 구속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판결이었다. 이번 판결에 대해 프랑스 시사주간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마티유 들라후스 대기자는 “검찰과 법원이 공금횡령 및 금융 관련 범죄자들에게 강력한 사인을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칼바람은 야권 좌파로도 향했다. 사실 이번 검찰의 광풍 행보가 언론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은 지난 9월19일 열렸던 장 뤼크 멜랑숑의 재판 때문이었다. 그는 프랑스 극좌 계열의 정당인 ‘프랑스 앵수미즈’의 당수로 지난 대선에서 4위로 뛰어오르는 돌풍을 일으킨 대표적인 좌파 정치인이다. 이번 재판은 지난해 10월 프랑스 검찰에 의해 정당 사무실과 자택이 압수수색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폭력사태에 관한 재판이었다. 당시 멜랑숑 당수와 당직자들은 사무실과 집에 들이닥친 경찰과 검사를 밀치는 등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공판을 앞두고 장 뤼크 멜랑숑은 폭력사태에 대한 해명보다 압수수색부터 정당하지 않았다며, 정권의 의도가 개입된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튿날 라디오에 출연한 니콜 벨루베 법무부 장관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프랑스를 캄보디아나 러시아 수준으로 보고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압수수색에 대해 정권 차원의 개입은 없었다”고 일축했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야권 인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마크롱 정권의 의도가 실려 있다는 의혹과 함께 ‘검찰의 독립성’이 논란이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검찰의 독립성’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것이 검찰이었으며, 그런 검찰권의 독립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은 마크롱 정권이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1월 대법원을 찾은 마크롱 대통령은 “검찰은 법무부 장관과 결속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언론은 당시의 발언을 두고 검찰과 정치권력의 위계적 관계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지난해 10월 제5공화국 60주년 행사에선 “검찰과 행정부 그리고 의회를 잇는 라인이 단절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당시는 프랑스 상원에서 ‘검찰의 독립성 강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리기 이틀 전이었다. 검찰을 독립의 대상이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18년 1월, 프랑스 최고법원인 ‘파기원’을 방문해 공식 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 ⓒ EPA 연합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18년 1월, 프랑스 최고법원인 ‘파기원’을 방문해 공식 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 ⓒ EPA 연합

“노란조끼화된 검찰에 대통령이 분노할까”

대통령의 검찰에 대한 관심은 지난해 파리 검사장 인사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로 예정되었던 정기 인사를 두고 7월부터 엘리제궁에서 특정 후보를 제외할 것을 요구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에두아르 필립 총리가 검사장 후보 3명을 면접했다는 르몽드의 보도가 전해지자 검찰 고위층에서는 불만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익명의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사법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성토하며 “장관을 허수아비로 만들며 원하는걸 기필코 얻어내겠다는 것인가”라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현재 프랑스 법 체계상 파리 검사장은 대통령이 의장으로 있는 ‘고등사법위원회의’의 권고를 받아 법무부 장관이 임명하게 돼 있다. 이때 위원회 권고에는 구속력이 없다.

소위 대통령이 내려꽂은 파리 검사장은 올 초 탐사보도 전문 매체인 메디아파르를 전격 압수수색하며 다시 논란에 불을 지폈다. 메디아파르는 지난해 마크롱 정부를 위기로 몰아넣은 베날라 스캔들(대통령 경호원의 시민 폭행 사건)을 보도한 매체다. 더구나 압수수색이 베날라에 관한 녹취를 입수하기 위해 이루어졌다고 전해지자, 프랑스 주간 렉스프레스는 “파리 검사장의 첫 헛발질”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르 조르날 드 디망쉬의 파스칼 세오 기자는 검찰의 노골적인 반발을 두고 “노란조끼화된 검찰에 대통령이 분노할까”라고 물으며 검찰과 정치권의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고 결론지었다. 노란조끼는 마크롱 정부의 정책에 반발해 지난주 44차까지 진행된 시위대를 이르는 말이다. 프랑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그 어느 때보다 현란한 검찰의 광폭 행보를 두고 “정치권도, 검찰도 국민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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