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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버렸다”Ⅱ①] 화마와 싸우다 숨진 소방관, 국가와 싸워야 하는 유족들

질병 걸리거나 사망 시 인과관계 직접 입증해야…복잡한 공상 신청 과정도 문제 지적돼

조유빈 기자·김정록 인턴기자 ㅣ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9(Wed) 10:41:00 | 15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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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소방관 유족들에게 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를 밝히라는 게 말이 되나. 죽으면 개죽음이다. 우리가 국가를, 국민을 위해 땀 흘려 일하고 싶겠나.” 현직 소방관의 말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화마(火魔)와 싸우다 숨을 거둔 소방관의 유족들은 ‘순직 인정’을 두고 다시 국가와 싸워야만 했다. 

 

지난 5월, 한 베테랑 소방관이 훈련을 마친 뒤 집에서 숨졌다. 14년 동안 화마와 싸워온 고(故) 이정렬 소방관이었다. 연기가 가득한 현장에서 대형 호스를 들고 9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고강도 훈련을 사흘 동안 받은 이 소방관은 집에 돌아와 심정지로 쓰러졌다. 당시 부산소방본부는 이 ‘종합전술훈련’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최악의 가상 상황을 부여해 실전을 방불케 하는 종합적 훈련이 될 것”이라고 알렸다.

 

함께 훈련에 참여한 소방관들도 이 훈련이 비정상적으로 고강도였다고 평가했다. 훈련에 참여한 한 소방관은 “(훈련 중) 산소통을 두 개씩 멨는데, 실전에서도 이렇게는 안 한다. 소방호스를 직접 들고 고층 건물에 오르지도 않는다. 50층 건물이라도 외부에서 호스를 옮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방관은 “농연(짙은 연기) 속에서 50kg에 가까운 애니(훈련용 마네킹)를 옮겼다. 10kg 정도 되는 물에 젖은 호스 4장을 4층까지 올리고, 공기호흡기를 쓰고 애니를 외부로 옮기는 훈련을 2~3회 반복했다”며  “공기호흡기와 애니 무게를 합치면 80kg 정도다. 매우 힘들었다”고 말했다. 훈련을 하다 주저앉을 경우 팀이 재훈련을 해야 한다는 점이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례적인 과잉 훈련이 사망 원인으로 지적됐다. 소방관이 현장에서 화재진압이나 인명구조작업을 하다 위해를 입은 경우, 혹은 이에 준하는 위험업무 도중 위해를 입을 경우 위험직무순직공무원으로 인정된다. 공무원 재해보상법은 위험직무순직공무원을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가 재해를 입고 그 재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한 공무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실기·실습 중 입은 재해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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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 신청 절차 복잡…입증 자료 확보도 어려워

 

그러나 이 소방관의 위험직무순직 인정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소방관이 훈련을 마친 뒤 집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훈련이 사망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는지 입증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동료 소방관들이 고강도 훈련이었다고 증언했지만, 사고 당시 부산소방본부는 “이 훈련은 센터에서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훈련을 실전에 맞게 추려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육체적 부담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업무와 사망의 연관성을 부정했다. 한 부산소방본부 관계자는 “(순직은) 현장 사망 시 인정되는 걸로 돼 있어 우리도 판단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직도 이 소방관의 아내 이지영씨는 남편의 순직 신청을 하지 못했다. 이씨는 “남편이 사망한 뒤 소방본부 측이 위험순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순직 신청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사망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훈련 중 재해를 입었는지가 중요한 것”이라면서도 “아직 유족이 심사 청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정렬 소방관의 위험순직 여부에 대해 뚜렷하게 전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망하거나 다친 소방관들이나 가족들이 공상 신청 자체를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복잡한 신청 절차 때문이다. 공상 신청 과정은 이렇다. 피해자들은 공상신청서를 소방서를 통해 공무원연금공단에 제출한다. 여기에 심사청구이유서와 사건 경위서 등 준비 서류가 필요하다. 동료 소방관의 확인서와 함께 근무했던 소방관들의 진술서 등 근무 당시 상황을 입증할 증거들도 필요하다. 화재나 사고, 실습 현장의 위험성을 입증할 만한 자료와 현장 사진 등도 필요하다. 이 모든 자료는 다친 소방관, 혹은 사망한 소방관의 유족이 직접 준비해야 한다. 행정사나 변호사 등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에 대한 비용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공상이 인정되고 나서야 위험직무순직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인사혁신처에서 따로 심사하게 된다. 최인창 한국소방단체총연합회 총재는 “피해를 입은 소방관들이 신청 과정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과정 자체가 복잡해 법적 도움을 얻으려고 해도 개인적으로 알아봐야 한다”며 “경제적 부담도 돼 공상 신청 자체를 시작하지 못하는 소방관이나 유족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9월21일부터 ‘공무원 재해보상법’에 따라 공무원연금공단의 공무원연금급여심의회와 인사혁신처의 위험직무순직보상심사위원회를 인사혁신처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로 통합한다”며 “재해보상심사담당관을 신설해 심사 절차를 통합하고 간소화시켜 유족의 편의를 높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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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병-업무 연관성도 피해자가 입증해야

 

고 이병준 소방관의 아내 유선희씨도 남편에 대한 공무상 사망 신청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직접 사비를 들여 법적인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전문가들이 공무상 사망판정을 받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화마와 싸우던 이 소방관은 2013년 12월 뇌종양 교모세포종을 진단받았고, 2016년 7월 숨을 거뒀다. 유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업무 환경이 남편의 사망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방관은 직전 근무지에서 동료의 사망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기도 했다. 공무상 사망 신청 절차에 어려움을 느낀 유씨가 변호사와 손해사정사에게 법률적인 도움을 받으려고 했지만, 이들은 “교모세포종과 소방관 업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전 사례들을 보더라도 공상 인정이 안 될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고인의 사망과 업무 및 훈련의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법률적·의학적 지식이 없는 피해자나 유족들이 질병과 공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현대의학이 원인을 짚어낼 수 없는 질병일지라도 부상이나 사망이 업무와 연관이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업무 환경을 가장 잘 아는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 유족들이 업무 환경을 입증하는 일은 더 고될 수밖에 없다. 

 

고 이정렬 소방관의 아내 이지영씨도 고인의 업무 환경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씨는 “(남편이) 위험한 일이라 평소 가족에게 업무 환경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며 “남편이 숨지게 된 훈련 환경도 직접 동료 소방관들에게 진술을 부탁해 알게 된 것”이라고 토로했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암이나 희귀질병에 걸린 소방공무원의 공무상 요양 신청 건수는 21건이다. 이 가운데 12건만이 인정됐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질병으로 사망한 소방공무원 중 순직을 신청한 소방관은 24명이었고, 이 중 17건이 순직으로 인정됐다. 나머지 7건은 업무와 질병 간의 상관관계가 인정되지 않았다. 

 

고 이병윤 소방관도 업무와 질병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 소방관은 서울에서 7년을 근무한 뒤 포항에서 5년을 근무했다. 총 3300건의 화재 현장을 누빈 이 소방관은 2011년 8월 폐암 진단을 받았고, 2012년 7월 사망했다. 이후 이 소방관의 아내 김순이씨는 남편의 공무상 순직을 신청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포항에서 이 소방관의 근무지가 화재 현장이 아니었다는 점, 또 이 소방관이 흡연을 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면서 폐암과 공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순이씨는 “과거 7년을 위험한 화재 현장에서 일했는데 최근에 현장에서 일하지 않았다고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은 소방관들의 유족들은 결국 소송을 통해 국가와 싸워야 했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7년까지 공단을 상대로 제기된 행정소송은 총 20건에 이른다. 이 중 9건만이 질병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됐다. 고 김범석 소방관의 아버지 김정남씨도 아들의 공무상 상해를 입증하기 위해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김 소방관은 화재 출동 270회, 구조 활동 751회 등 1021차례를 현장에서 일했다. 그러다 2013년 희귀병인 혈관육종암 판정을 받았고, 2014년 31살의 나이로 숨졌다. 유족은 김 소방관이 화재 현장의 유해물질과 업무상 스트레스로 병을 얻었다고 주장했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고인의 공무상 사망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혈관육종암은 의학계에서도 발병 원인조차 밝히기 어려운 희귀한 질병이다. 현대의학이 밝히지 못한 희귀병이라고 해도 유족들은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밝혀야 한다. 김정남씨는 “피해자가 숨진 상황에서 유족이 업무 환경, 업무와 질병의 직접적 인과관계 등을 입증하기는 어렵다”며 “공무상 사망이 인정되지 않으면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전에 들어가야 한다. 시간적·경제적 여건도 유족들을 더 힘들게 한다”고 토로했다.

 

소송을 통해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인정받더라도, 다음 단계인 인사혁신처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되는 일이 쉽지 않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위험직무순직이 생긴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위험순직으로 인용된 사례는 58%에 불과하다. 이에 불복해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도 15건이다. 이 중 3건만이 위험순직으로 인정받았다.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위험순직은 경위조사서, 검안 자료를 바탕으로 개인 건강 상태, 음주나 흡연, 개인 기질 등을 종합해 판단하기 때문에 피해자 입장에서는 심사가 까다롭다고 느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국가가 공상 인과관계 입증

 

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에서는 소방관이 암에 걸렸을 때 직무와의 연관성을 국가가 입증한다. 1982년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시행된 ‘암 추정법’에 의해 미국 33개 주는 암과 소방관 직무의 연관성을 인정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소방관이 암과 같은 질병에 걸렸을 경우 공상으로 인정하고, 예외적으로 공상에 해당하지 않는 사례를 국가가 입증하는 것이다. 피해 당사자가 공상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반대다.

 

2017년 5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위험직무 종사 공무원에 대한 공상추정법’을 발의했지만 아직도 국회에 계류돼있다. 이 법안은 소방관처럼 재난이나 재해 현장에서 일정 기간 이상 구호 및 수습 업무에 종사한 공무원이 암이나 희귀질병에 걸릴 경우 이를 공무상 질병으로 추정한다는 내용이다. 표 의원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본인이 공상이라는 것을 직접 입증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고통까지 겪어서는 안 된다”며 “국가는 위험직종에서 발생하는 질병에 대해 상관관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버렸다”Ⅱ’ 특집 연관기사

☞[“국가가 버렸다”Ⅱ②] 보훈심사위 “선례 될 위험”…피해 군인 외면 

[“국가가 버렸다”Ⅱ③] 표창원 “질병과 공무 연관성 국가가 입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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