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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마천루로 만든 김정은

[이영종의 평양인사이트] “北 경제난 감추려는 체제 선전용” 분석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0.10(Wed) 14:00:00 | 15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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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교류와 협력에 탄력이 붙고 있다. 회담에서 서명된 ‘군사 분야 이행 합의서’에 따라 비무장지대(DMZ)에서의 지뢰제거 작업이 착수됐고, 곧이어 6·25전쟁 당시 이 지역에서 숨진 남북한 군과 유엔 참전군 등의 유해 발굴 작업도 이뤄질 전망이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남북 정상회담과 10·4 합의를 기념하기 위한 공동행사도 평양에서 열리는 등 당국·민간 차원의 방북도 이어지고 있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과 민간단체의 방북 등이 이어지면서 과거와 확 달라진 평양의 파노라마가 화제에 오르고 있다. 대동강변을 따라 들어선 고층 주상복합 빌딩과 아파트는 물론 미니 신도시 수준으로 개발된 여명거리 등 평양의 모습이 연일 TV방송 등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평양의 발전이 참으로 놀랍다. 대동강변을 따라 늘어선 고층빌딩과 평양 시민들의 활기찬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려온 북한에서 이런 건설·건축이 이뤄졌다는 점에 모두들 놀라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시대 들어 이런 움직임이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대북제재를 이겨낸 북한의 저력’으로까지 평가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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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대동강변 들어선 고층건물에 놀라움 표시


2011년 말 김정일 사망으로 집권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시 건설과 함께 체제 선전형 건축물을 짓는 데 올인했다. 평양 정상회담을 위해 항공편으로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을 맞이한 순안공항은 그 가운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직접 공사현장을 수차례 방문했고, 국제 수준의 공항으로 건설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김 위원장이 이곳 건설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공사가 한창이던 2014년 가을 현지 점검차 공항을 방문한 김정은은 인테리어 공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서 “이런 식이면 어느 나라의 공항과 다를 게 없다. 주체적으로 건설하라 했는데 이행하지 않았다”고 불호령을 내렸다. 당시 공사 책임자는 김정은의 건설 참모로 알려진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이었다. 백두산건축연구원 설계사로 일하다 김정은의 눈에 들어 벼락출세한 마원춘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해임돼 가족과 함께 양강도 협동농장으로 추방됐다. 1년 만에 구사일생으로 복귀했지만 유난히 핼쑥해진 몰골에 김정은의 곁에 접근하는 걸 꺼리는 듯 겁먹은 표정까지 나타났다. 김정은 위원장은 공항 준공식장에서 평양과 순안공항 사이에 고속철을 놓자며 새 공항시설에 애착을 보였다.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 집권 이후 시기를 ‘주체건축의 새로운 전성기’라고 주장한다. 특히 “오늘 평양에서는 사회주의 문명국의 면모를 보여주는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며 이를 김정은의 “정력적인 영도가 낳은 결실”이라고 찬양하는 데 몰입하고 있다. 집권 첫해인 2012년에만도 김정은에 의해 평양시 창전거리와 인민극장, 평양아동백화점, 능라인민유원지, 유경원, 인민야외빙상장, 평양민속공원이 잇달아 완공됐다는 것이다. 


사실 건설 분야에 대한 북한 최고지도자의 관심은 김정은이 처음은 아니다. 아버지이자 선대 수령인 김정일도 1974년 2월 노동당 5기 8차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으로 권력을 넘겨받기까지 20년간 김일성 유일영도체계 확립과 함께 대형 건설·건축 프로젝트에 주력했다. 평양시 창광거리와 문수거리에 고층 아파트를 비롯한 현대적 주거시설을 건설하고 주체사상탑이나 개선문, 평양산원 등 북한이 체제 선전 차원에서 내세우는 상당수 건축물을 짓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김정은의 경우는 건설·건축 분야에 전례 없이 몰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은 평양건축종합대학 창립 60주년을 맞은 2013년 11월 직접 이곳을 방문해 “건축인재 양성의 거점”이라고 강조하며 교육사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또 김정은은 자신이 이 대학의 명예총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행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평양을 과시성 대형 건축물로 꾸며 거대한 쇼윈도를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집권 5년 차인 그가 강원도 문천에 건설한 마식령스키장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건설·건축은 평양에 집중됐다. 문수물놀이장이나 미림승마구락부, 능라인민유원지 등이 대표적이다. 스위스 조기유학 당시 자신이 체험한 세계적인 워터파크인 알파마레를 본뜬 유람선도 대동강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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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만리마 속도’나 ‘평양 속도’ 같은 신조어까지 내세우면서 이른바 노력 경쟁을 촉구했다. 그러다 보니 부실공사로 인한 대형 참사가 벌어지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2014년 5월에는 건설 중이던 평양 평천구역 23층 아파트 붕괴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미처 공사가 끝나기도 전에 입주했던 주민들이 비교적 부유하고 특권을 누리던 사람들이라 입소문이 북한 외부까지 번졌다. 

 

김정은은 공사 책임자를 주민들 앞에 세워 사과하게 하는 등 수습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북한은 참사 이후에도 평양 대동강변에 53층 주상복합 아파트와 46층짜리 쌍둥이 고층 아파트를 짓고 이를 핵 개발과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에 기여한 과학자와 기술자들에게 선물용으로 나눠줬다. 건축물을 체제 유지를 위한 세력을 관리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들어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호전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고층빌딩 건설이나 580만 대에 이르는 휴대폰 보급, 야간에도 전력이 끊기지 않는 등의 모습에서 이를 감지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경제나 민생 전반이 좋아진 게 아니라 평양 등 일부 특권층에 한해 벌어지는 일종의 ‘쇼윈도’ 효과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고위 탈북인사는 “정상회담이나 남북 관련 행사를 위해 방북한 인원이나 대표단을 위해서는 최고로 잘 짜인 시설 참관이 이뤄지고 전력의 경우도 우선 보장된다”고 귀띔했다. 2500만 인구 중 극소수에 불과한 평양 시민을 위한 시설일 뿐 일반 주민들의 삶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아직은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으로 주민들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평양 시민만 잘 먹고 잘살아”


북한 엘리트 세력이나 주민들도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언급이나 서울과 워싱턴을 향한 유화 제스처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젊은 최고지도자가 과연 남한과 미국 등과의 정상회담 담판을 통해 개혁·개방 쪽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에서다. 집권 이후 6년 동안 벌여온 핵과 미사일 도발, 고모부 장성택까지 무참하게 처형하는 공포정치에서 벗어날 것이냐가 관건이란 얘기다. 

 

김정은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이행과 남북 및 북·미 관계개선 조치에 나서기 전까지는 거대한 세트장을 방불케 하는 평양의 화려한 겉모습에 현혹돼선 곤란하다는 신중론에도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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