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욕망의 캐슬을 넘어서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8 09:00
  • 호수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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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는 살아생전 하나뿐인 당신의 딸이 지금의 초등학교인 소학교를 끝으로 더 이상 배움의 길을 이어가지 못한 것을 오래도록 미안해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를 떠나 외할아버지의 완고함 탓에 오빠와 남동생과 달리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서였다. 

자녀 교육에 대해 애틋한 마음은 70여 년 전 외할머니 시대나 지금이나 똑같다. 이번 설 연휴에 고향집에서 만난 가족·친지들 사이에 화제가 된 것도 단연 ‘입시 교육’이었다. 정치권에서는 김경수 경남지사의 판결에 초점을 맞춰 설 민심을 아전인수 격으로 편집해 전하기 바빴지만, 실상은 달랐다. 정치 이야기 대신 우리 사회를 폭풍처럼 흔들고 지나간 한 드라마가 대화를 온통 빨아들였다. 비지상파 드라마로는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고 설 바로 직전에 막을 내린 《SKY캐슬》이 그것이다.

교육에서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는 지방 사람들 처지에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이나 피라미드 모형, 등장인물들의 파격적인 대사 등이 꽤나 생소했던 듯하다. 드라마 속 ‘상위 1%’의 모습이 실제와 똑같은지, 고급 과외는 과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를 묻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나 서울의대 합격하지 못하면 엄마가 책임질 거야”라는 고3 학생의 앙칼진 외침, “입시 결과만 좋으면 그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어. 우리야말로 무한경쟁 시대에 저들의 영혼을 사로잡을 우상이니까”라는 입시 코디의 섬뜩한 발언 등도 연신 입방아에 올랐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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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이 드라마에 묘사된 입시생들의 상황은 ‘입시 지옥’에 비견되는 우리네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 이른바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이 입시 제도의 근간을 이루면서 상위권 학생들의 내신 경쟁도 그만큼 치열해졌다. 입시생들 사이에 “신 중의 신은 내신”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사교육비 압박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18년 교육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학부모들이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전년보다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초·중·고교 학부모 10명 중 9명은 사교육비로 인해 가계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런데도 교육 당국이 내놓는 대책은 고작 불법 사교육 행위 합동점검과 시·도교육청 지도·점검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수시 전형이건 정시 전형이건 형태야 어찌 됐든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한 경쟁’이다. 학부모들은 내 자식이 경쟁에서 억울한 일만큼은 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같은 사건과 마주치면 억장이 무너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 당국의 최우선 과제도 그 ‘공정’의 틀을 바로 세우고 유지하는 데 맞춰져야 마땅하다. 교육마저 공정성의 신뢰를 잃은 채 욕망으로 세워진 특정 계층의 캐슬에 갇히면 우리 사회의 미래에 더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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