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는 중국이 고마운 차이잉원 대만 총통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7 11:00
  • 호수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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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도발한 ‘파인애플 전쟁’에서 완승 거두며 지지율 반등 성공

3월3일 대만 수도 타이베이 중심가의 민진당 중앙당사.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천치마이 가오슝시장 등 대만 중남부 4개 지방자치단체장들과 함께 온라인 기자회견을 가졌다. 차이 총통은 이 자리에서 “2월27일부터 4만1000톤의 파인애플을 판매했다”면서 “국내외 여러분이 지지해 주신 덕분에 이룬 성과”라고 치하했다. 행정원 농업위원회는 따로 기자회견을 열어 “구매 신청을 받은 물량은 4만1687톤”이라며 “이런 실적은 올해 판매 목표인 수출 3만 톤, 내수 2만 톤의 83%를 각각 달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차이 총통이 파인애플과 관련해 가진 기자회견과 실적 발표는 중국을 향한 반격이었다. 2월26일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의 마샤오광 대변인은 “3월1일부터 대만 파인애플의 수입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 이유에 대해 “2020년 대만에서 수입된 파인애플에서 검역성 유해생물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만판공실은 대만 관련 정책과 업무를 총괄하는 중국 정부 부처다. 보통 수출입 상품과 관련된 문제는 해관총서에서 처리한다. 따라서 대만판공실이 대신 나서서 대만산 상품의 수입 금지 조치를 발표한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2월27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앞줄 오른쪽 세 번째)이 가오슝의 한 파인애플 농장을 찾아 갓 수확한 파인애플을 손에 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차이잉원 총통 SNS
2월27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앞줄 오른쪽 세 번째)이 가오슝의 한 파인애플 농장을 찾아 갓 수확한 파인애플을 손에 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차이잉원 총통 SNS

총통이 주도한 ‘파인애플 잔뜩 먹기 챌린지’

대만판공실의 성명 이후 대만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농업위원회는 “수출되는 파인애플은 100% 강력한 검역을 거친다”면서 “유해생물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같은 날 저녁에는 차이 총통이 직접 나섰다. 각종 SNS를 통해 ‘파인애플을 먹어 농민을 돕자’는 게시글을 올린 것이다. 글에서 “2020년 대만 파인애플의 중국 수출 물량에서 합격률은 99.79%에 달했다”면서 “이번 일은 중국 대만판공실이 어떤 사전 경고 없이 갑작스럽게 내린 조치”라면서 중국의 결정이 경제 보복임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시태그(#)를 달아 ‘파인애플 잔뜩 먹기 챌린지’를 주창했다.

2월27일 차이 총통은 가오슝시의 한 파인애플 농장을 찾아갔다. 차이 총통은 가슴에 ‘TAIWAN’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옷을 입은 채, 현지 인사들과 함께 갓 수확한 파인애플을 손에 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또한 현장에서 파인애플을 깎아 먹었다. 시식 후 차이 총통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농민의 수입이 감소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이 소식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은 곧바로 SNS를 통해 공개했다. 그 뒤 라이칭더 부총통, 쑤전창 행정원장 등 집권 민진당 지도자들도 일제히 파인애플 농장을 찾아 인증 샷을 남겼다.

차이 총통이 일으키고 민진당 지도자들이 함께 한 ‘파인애플 잔뜩 먹기 챌린지’는 곧 대만 전역으로 퍼졌다. 대만인들은 앞다퉈 파인애플을 먹는 사진과 동영상을 해시태그를 달아 SNS에 올렸다. 파인애플을 빙수나 잼으로 만들거나, 한 사찰에선 부처님께 공양 음식으로 올리기도 했다. 한 밴드는 파인애플을 많이 먹자는 노래를 제작해 무료로 보급했다. 여기에 대만 주재 미국대표부인 미국재대만협회와 캐나다주타이베이무역판사처, 일본대만교류협회 등 외국 기관도 구입에 참여했다. 그 결과 3월3일 4만1687톤이라는 구매 신청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파인애플을 콕 집어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을까. 대만 집권여당 민진당의 정치적 기반인 중남부 농민들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대만은 전통적으로 야당인 국민당은 북부에서, 민진당은 중남부에서 지지세가 강하다. 최근 치러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결과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2014년 민진당은 가오슝·타이난·타이중 등 중남부를 중심으로 13개 시·현의 단체장을 차지했다. 2018년 선거에선 대패하는 와중에도 타이난 등 6개 시·현을 지켰다. 또한 지난해 6월 보궐선거를 통해 가오슝을 되찾았다.

농업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대만 파인애플 주요 생산지 중 남부인 핑둥과 가오슝이 각각 30%와 14%, 중부인 자이와 난터우가 각각 13%와 12%를 차지했다. 최대 생산지인 핑둥현은 차이잉원 총통의 고향이기도 하다. 2019년 파인애플 전체 생산량은 42만 톤이었고, 그중 5만1475톤이 수출됐다. 전체 수출량의 97%를 중국이 차지했고, 나머지는 일본(2%), 홍콩(1%) 순이다. 이런 현실로 인해 중국이 수입을 금지하면 중남부 농민들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그 약한 고리를 택해 경제 보복에 나선 것이다.

사실 농업이 대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로 미미하다. 중국으로 수출하는 파인애플도 15억 위안(약 605억원)어치에 불과하다. 이처럼 대만의 경제나 수출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작지만, 중국이 다시 경제 제재에 나섰다는 점에서 대만인들이 느끼는 분노는 남다르다. 중국은 지난해 1월 치러졌던 대만 총통선거에서 차이잉원 총통의 연임을 막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했다. 2017년부터 단체관광객의 모객 활동을 제한했고, 2019년 8월에는 개별관광객의 대만 여행을 중단시켰다. 그로 인해 대만에서 2015년 418만 명에 달했던 중국인 관광객은 2019년 271만 명으로 급감했다.

2월28일 중화경제연구원 대륙연구소의 우자쉰(吳佳勳) 부소장은 ‘빈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파인애플 수입 중단은 대만 제재의 전주곡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 부소장은 그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올해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기에 강경한 대외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7월1일 기념일을 전후해서 여러 대형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둘째는 중국엔 후폭풍이 없으면서 대만엔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이 농산물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대만은 중국의 막대한 반도체 및 관련 장비 구입 덕분에 3.1%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대만 야당 “중국이 차이잉원 돕는 수호신”

여기에는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제재가 배경이 되었다. 중국은 미국에서의 수입이 막히자 대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본래 대만 산업은 중국 경제 성장에 따른 중간재 수출로 큰 수혜를 얻는 구조다. 그 덕분에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지난해 대만의 경제성장률은 중국(2.3%)을 앞섰다. 게다가 올해 경제 전망은 더욱 밝다. 세계 1위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대만 비메모리 반도체의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의 자동차에 쓰이는 비메모리 반도체가 공급 부족을 겪고 있어, 대만은 큰 호황을 누리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2014년 이래 최고치인 4.6%가 예상될 정도다.

따라서 중국의 대(對)대만 경제 제재 조치는 별다른 성과 없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파인애플 잔뜩 먹기 챌린지’에서 볼 수 있듯, 대만인들의 반감만 분출시켜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차이잉원 총통의 입지만 단단하게 해 주고 있다. 차이 총통은 지난해 사료첨가제 락토파민이 함유된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허용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뒤 지지율이 15~20% 떨어진 상황이다. 오는 8월 이 정책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까지 앞두고 있다. 그로 인해 야당인 국민당 일각에서는 “중국이 차이잉원을 돕는 수호신”이라는 볼멘 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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