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동안 정치 재미없게 한 올드보이들을 또 봐야 하나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02 16:05
  • 호수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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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월 총선 앞두고 과거 정권 세력들 다시 기지개
미래가 아닌 과거로 돌아가는 퇴행정치 막아야

선거철이 다가오자 어김없이 ‘올드보이’들이 돌아오고 있다. 1년간의 미국 연수를 끝내고 최근 귀국한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항에서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환영 나온 지지자들 앞에서 “이제부터는 안 떠나고 여러분 곁에 있겠다”고 했으니, 누가 들어도 정치 재개 선언이다. 마침 민주당에서는 ‘김은경 혁신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민주당의 혁신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친명’(親이재명)이 다수를 차지한 혁신위가 민주당의 본질적인 문제를 얼마나 건드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런 시점에 정치를 재개하는 이 전 대표는 물론 풍부한 정치적 경험과 연륜을 갖고 있다. 민주당이 그동안 보여온 강경 일변도의 정치를 생각하면 이 전 대표가 정치의 복원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전 대표에게는 벗어나기 어려운 한계 또한 존재한다. 그의 나이가 이제 70대, 정치권의 ‘올드보이’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다. 다음 대선 도전을 꿈꾸기에도 조금은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었다. 물론 나이가 정치활동에 제약이 될 순 없고, 팔순이 넘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재선에 도전하겠다는 선언까지 했지만, 그렇다면 젊은 정치인들 못지않게 젊은 사고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민주당 내 세력 구도가 ‘이재명 대 이낙연’으로 재편된다면 이는 미래가 아니라 1년 전으로 돌아가는 퇴행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법하다.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많지만, 그렇다고 이낙연 전 대표가 새로운 리더십으로 평가받을 손에 잡히는 무엇도 지금은 딱히 없는 현실이다. 이 전 대표가 민주당 내에서 ‘포스트 이재명’의 대안이 될 리더십을 보여줄지, 아니면 ‘올드보이의 귀환’이라는 소리를 듣는 데서 그칠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왼쪽부터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박지원 전 국정원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우병우 전 민정수석,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연합뉴스

야권에선 ‘조국 대 反조국’ 구도 재연될까 우려

비단 이 전 대표만이 아니다. 와신상담 복귀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기성 정치인들에게 총선은 그대로 보낼 수 없는 절호의 기회다. 먼저 민주당을 중심으로 여러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자의에 상관없이 정권교체 이후로 침묵 모드에 들어갔었다. 법무부 장관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너무 거칠게 몰아붙이다가 대통령으로 키워준 공신 노릇을 했다는 시선 속에서 그동안 정치에 나설 입지를 찾지 못한 추 전 장관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누구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그가 정치 재개를 본격화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듯하다. 최근 추 전 장관은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출마 여부에 대해 “천천히 여쭤 달라”며 굳이 부정하지 않아 사실상 출마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해석을 낳았다.

한때 민주당을 떠나 국민의당으로 갔다가 돌아온 원로급 정치인들도 내년 총선 출마 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제 80대 나이가 된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계속 검찰에서 조사를 하고 경찰에서 압수수색도 하니까 현실정치로 나갈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 총선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천정배 전 의원도 출마 지역구까지 거론되고 있다. 혁신을 하겠다는 민주당이 ‘올드보이’ 소리를 듣는 이들에게 과연 공천장을 줄지는 알 수 없지만 당사자들의 의지는 대단히 적극적이다. 

나이로 따지면 ‘올드보이’는 아니지만, 과거의 재연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 인물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그는 얼마 전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고 나서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길 없는 길’을 걸어가겠다”고 밝혀 총선 출마를 시사했다. 그러나 자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서 출마한다는 것이 온당한가라는 비판, 조 전 장관이 출마할 경우 총선이 ‘조국 대 반()조국’ 구도가 될 것에 대한 민주당 내 우려가 이어지면서 일단은 주춤한 모습이다. 자신의 출마가 몰고 올 역풍이 간단하지 않을 것임은 조 전 장관도 예상하겠지만, 자신의 명예회복에 대한 집착 또한 그 이상으로 강할 것이기에 출마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조 전 장관이 출마할 경우 민주당이냐 무소속이냐 하는 것은 그리 큰 차이가 있는 본질적 문제는 아닐 것이다.

 

친박 인사들 귀환 움직임에 여권 불편함도

한편 국민의힘 주변에서도 ‘친박’(親박근혜) 인사들을 중심으로 귀환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핵심 중 핵심이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얼마 전 인터뷰를 통해 총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 “정치를 하느냐 마느냐보다는 그래도 평생 공직에 있었으니 국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뭘까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그의 발언은 출마를 염두에 둔 사람들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어법이다. 그러나 우 전 수석의 총선 출마에 대해서는 국민의힘 내부에서부터 반대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내에서는 단 한 번도 얘기해본 적 없는 상황이고, 국민들께서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김병민 최고위원), “우리가 굳이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있겠느냐”(장예찬 최고위원) 등 국민의힘으로서는 우 전 수석이 출마할 경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책임을 둘러싼 논란에 당이 갇힐 것을 우려해 입당과 공천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많은 상태다. 

역시 박근혜 정부의 핵심 인물이었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출마설도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최 전 부총리의 경우 국민의힘 공천이 아니더라도 우 전 수석, 유영하 변호사 등과 함께 대구·경북 지역에서 ‘친박’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안 전 수석은 자신이 설립한 정책평가연구원의 심포지엄을 최근 열면서 역시 내년 총선을 앞둔 움직임이라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사법적 단죄까지 받았던 친박 핵심 인사들이 출마 의사를 갖는 것은 자신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총선에서 범보수층의 지지를 얻어야 할 국민의힘이 언제까지나 자신들을 무시하진 못하리라는 셈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친박 인사들이 국민의힘에서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 상황이 전개될 경우 당장 ‘국정농단 세력과의 야합’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국민의힘은 전국적으로 득보다 실이 압도적으로 큰 결과를 맞을 것이 예상된다. 특히 총선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중도층에는 친박 세력과 다시 손잡는 과거 회귀 정치는 심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소방관 출신의 민주당 초선 오영환 의원은 지난 4월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로지 진영 논리에 기대 상대를 악마화하기에 바쁜, 국민이 외면하는 정치 현실에 대해 책임 있는 정치인의 한 명으로서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정치에 대해 정작 책임이 많은 정치인들은 나이 칠십이 되고 팔십이 되어도 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은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었는데, 우리 정치의 올드보이들은 수십 년 동안 정치만 한다. 정치도 정치지만, 참 재미없게들 산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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