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생겼다가 사라지는 ‘도깨비 같은 부정맥’
  • 박효순 건강의학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11 15:05
  • 호수 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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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경우 1분 만에 사망할 수도
심장이 두근대며 어지럽고 식은땀 나면 지체 없이 119 신고해야

심장 부정맥이란 불규칙한 심장박동, 즉 비정상적인 심장 리듬 때문에 맥박 혹은 박동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는 질환이다. 규칙적이라도 지나치게 빠르거나 늦은 경우, 혹은 빨리 박동해야 하는 순간에 빨리 박동하지 않거나, 천천히 박동해야 할 때 천천히 박동하지 않는 현상 모두가 부정맥에 포함된다. 매년 11월11일은 ‘빼빼로데이’로 흔히 알려졌지만, 대한부정맥학회가 지정한 ‘하트 리듬의 날’이기도 하다. 부정맥 질환 인식 개선을 위해 ‘2개의 손가락으로 맥을 짚는 것처럼 자신의 맥이 부정확한지 아닌지를 일차적으로 자가진단을 한다’는 의미로 2019년부터 매년 11월11일을 ‘하트 리듬의 날’로 지정한 것이다.

부정맥의 가장 흔한 증상은 가슴 두근거림이다. 가슴이 방망이질하듯 지속적으로 빠르게 뛰는 경우와 간헐적으로 심장박동이 하나씩 건너뛰거나 강하게 느껴지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태와 함께 무력감, 어지럼증, 실신, 호흡곤란, 두근거림, 가슴 통증, 가슴 답답함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특이한 원인이 없는데도 숨이 차고 가슴 두근거림을 계속 느끼거나, 갑자기 이런 증상이 생겼다가 사라진다면 부정맥을 의심할 수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가장 흔한 증상은 가슴 두근거림

대한부정맥학회에 따르면, 부정맥은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는 가벼운 부정맥부터 1분만 지속해도 사망할 수 있는 치명적인 부정맥까지 범위가 다양하다. 가장 가벼운 부정맥은 조기 수축이다. 정상적으로는 심장의 동방결절에서만 전기가 만들어지는데, 심방이나 심실에서 정상 맥박보다 빨리 전기를 만들어 엇박자가 생기는 것을 뜻한다. 정확한 진단을 통해 혈압 관리와 생활 속 부정맥 발병 요인을 없애주는 것으로 관리가 가능한 수준의 부정맥이다.

치료가 필요한 부정맥 중 가장 흔한 것은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빠르고 불규칙하게 뛰는 심방세동이다. 인구의 급속한 고령화로 심방세동 환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심방세동이 발생하면 심장이 ‘바르르 바르르’ 떨리면서 심장혈관에 죽처럼 들러붙은 피떡(혈전)이 떨어져 나가 뇌혈관을 막는 뇌경색을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심방세동보다 더 심각한 부정맥은 심실이 갑자기 1분에 350~600회 불규칙적으로 수축하는 심실세동이다. 이는 전조 증상이 거의 없어 돌연사로 이어지기 쉽다.

부정맥은 갑자기 증상이 생겼다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정확한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증상이 생겨 병원에 갔을 때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멀쩡해지는 경우가 많아 ‘도깨비 같은 부정맥’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다. 가슴과 팔다리에 전극을 붙여 심장의 전기 활동을 기록하는 심전도 검사가 가장 보편적인 부정맥 진단법이다. 증상이 자주 나타나는 환자의 경우 생활 심전도 검사, 즉 홀터 모니터(holter monitor)가 필요할 수 있다.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24~48시간 동안 심전도 장치를 부착해 맥박의 변화를 확인하면서 부정맥을 진단하게 된다. 운동부하 검사로도 부정맥을 진단한다. 심전도로는 부정맥이 진단되지 않고 운동으로 부정맥이 유발되거나 악화하는지를 확인할 때 운동부하 검사를 사용한다. 러닝머신처럼 생긴 기계나 자전거를 이용해 운동 강도를 점차 높여가며 증상의 발현, 혈압, 심박수나 심전도의 변화를 측정한다.

부정맥 치료는 증상에 따라 다양하다. 심방세동의 경우 이를 없애 심장 리듬을 정상화하거나 먹는 항응고제를 투여해 혈전을 예방한다. 심장이 너무 느리게 뛰는 경우 느린 심장을 제대로 뛰게 하는 인공심장박동기 시술이 필요하다. 심장 안에 전극 선을 심고 전극과 연결된 전기 발생 장치를 피부 밑에 이식하는 것이다.

고주파 전극 도자 절제술은 고주파가 발생하는 긴 도자(導子)를 심장에 삽입해 부정맥의 발생 부위를 찾아 고주파를 방출하고 원인 조직을 파괴하는 방법이다. 냉각 도자 절제술은 냉각 풍선을 폐정맥 입구 전체에 밀착해 한 번에 냉각시켜 원인 조직을 괴사시킨다. 급사를 일으키는 부정맥인 심실세동의 경우 삽입형 제세동기를 인체에 장착해 치료할 수 있다. 삽입형 제세동기는 심장 안에 심는 전극 선에 코일이 감겨 있어 자동으로 심실세동이나 심방세동을 감지해 전기 충격을 내보냄으로써 심정지를 예방한다.

다양한 치료법 적용에도 부정맥이 재발하는 등 시술에 실패한 난치성 부정맥 환자에게는 ‘3D 매핑 시스템’이 해결책의 하나로 적용된다. 심장 내 전극 정보를 고밀도 및 고해상도로 자동 수집하고, 부정맥 전문의가 부정맥 시술 시 치료하고자 하는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부정맥의 원인으로는 과도한 음주, 흡연, 카페인, 스트레스, 불규칙한 수면,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 등이 꼽힌다. 부정맥 예방과 조기진단을 위해서는 스스로 맥박 측정을 통해 맥박이 이상하면 빨리 병원에 가서 진료받는 것이 좋다.

2019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바이오코리아 2019’에서 한 관계자가 휴이노의 손목시계형 심전도 기기 메모워치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부정맥 환자에게 음주는 ‘독극물’

호흡이 가쁜 심한 운동보다는 심장에 부담이 적은 적당한 운동, 즉 걷기나 자전거 타기 등 편안한 유산소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부정맥 환자에게 음주는 독극물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과음은 돌연사를 유발할 수 있는 심방세동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과음한 날 밤이나 다음 날 아침에 돌연사가 많이 발생한다. 심장이 두근대며 혈압이 떨어져 어지럽고 식은땀이 나는 경우, 갑자기 숨이 찬 증상, 지속적인 흉통, 심한 현기증 등 부정맥의 자각 소견이 느껴지면 빨리 의사의 진료를 받거나 응급실로 지체 없이 가야 한다. 혼자 움직이기 힘들면 즉시 119에 신고하고 주저앉거나 드러누워서 구급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대한부정맥학회는 부정맥의 조기 진단과 효율적인 환자 관리를 위해 크게 두 가지에 대해 정책적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첫째는 심전도 검사를 국가건강검진 항목에 포함시키는 일이다. 1인당 7000원 내외의 지원이면 부정맥의 1차 진단을 통해 환자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어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오히려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 학회의 주장이다. 둘째는 인공심장박동기, 이식형 심장율동전환 제세동기 같은 의료기기를 심장에 이식한 부정맥 환자를 대상으로 ‘원격(신속) 모니터링’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명용 대한부정맥학회 회장은 “의료인이 환자와 떨어진 곳에서 환자의 심장에 이식한 의료기기가 보내오는 데이터와 신호를 조기에 확인해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내리면 생명을 살리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환자의 상태를 데이터로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조기에 의사결정을 내려 신속한 대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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