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 연쇄살인 피해자’ 하루만 빨랐어도 살릴 수 있었다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4 10:05
  • 호수 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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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복, 1차 범행 후 6일 만에 또 다방 여성 노려
경찰, 범인 신원 파악했는데도 늑장 공개수배

경기도 파주시 금촌에 임시 거주하던 이영복(57)은 범죄 인생을 살았다. 그는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질러 무려 20여 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지난해 11월 출소한 이씨는 돈이 떨어지자 또다시 범죄 유혹에 빠져든다. 그는 밤늦게 여성 혼자 일하는 가게에서 돈을 훔치는 것이 특기였다. 다방의 경우 업주가 나이 많은 여성인 데다 밤에는 혼자 영업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해 12월30일 오후 집을 나선 이씨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로 이동한다. 범행 장소를 물색하다 오후 7시쯤, 한 지하다방에 들어갔다. 마침 다방에는 여성 업주 A씨(60대) 혼자 영업하고 있었고, 손님도 없었다. 이씨는 차 한 잔을 시켜놓고 기회를 엿봤다. A씨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돈을 훔쳐 도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이씨는 A씨에게 다가가 그를 마구 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후 현금 30만원을 훔쳐 달아났다.

ⓒ뉴스1
다방 연쇄살인범 이영복 ⓒ뉴스1

일산·파주·강릉 옮겨다니며 범행 대상 물색

A씨의 아들은 어머니가 귀가하지 않고 연락이 두절되자 걱정이 태산이었다. 12월31일 오후 3시쯤, 다방에 갔더니 문이 잠겨 있어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소방은 다방의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숨진 A씨를 발견한다. 이씨는 범행 후 곧바로 파주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었다. 그는 멀리 도주하지 않고 거주지인 금촌 일대에 머물며 추가 범행을 시도한다.

1월2일 오후 6시30분쯤, 이씨는 한 치킨집에 들어가 500cc 생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업주가 방심하는 틈을 노렸다. 얼마 후 업주가 화장실에 가자 기다렸다는 듯 돈통을 들고 나왔다. 치킨집 업주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가게 인근에 있는 폐쇄회로(CC)TV를 통해 이씨의 모습을 포착한다.

이씨는 범행 후 파주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잠입해 배회하며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범행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했는지 걸어서 경기도 양주시 적석면까지 갔다. 1월5일 저녁에 이씨는 불 켜진 다방이 눈에 들어오자 그곳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여성 업주 B씨(60대)와 종업원이 있었고,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이씨는 차 한 잔을 시켜놓고 있다가 종업원이 퇴근하고 B씨 혼자 남게 되자 그를 폭행해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목 졸라 살해한 후 현금을 훔쳐 나왔다. 이씨는 이번에는 파주로 가지 않고 서울로 이동한 후 고속버스를 타고 강원도로 이동했다.

다음 날 오전 8시30분쯤 다방에 출근한 종업원은 소파에 쓰러져 숨져 있는 B씨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양주 다방에서 2차 살인이 발생하자 범행수법이 유사한 점과 용의자 인상착의 등을 토대로 동일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을 정밀 감식해 보니 역시 동일범이었다.

경찰은 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을 직감했으나 3일 후인 1월5일 오전 9시쯤 공개수배로 전환하고 수배 전단을 배포한다. 이씨의 동선을 추적해 보니 강릉에 잠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형사대를 그곳에 급파했고, 당일 오후 10시44분쯤 강릉의 한 재래시장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CCTV를 통해 본 이씨의 절룩거리는 듯한 독특한 걸음걸이와 비슷한 남성을 발견하고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음주 전후의 걸음걸이가 현저히 다르다고 한다. 술을 마셨을 때는 특유의 절룩거리는 듯한 큰 동작의 걸음이 나온다는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CCTV에 찍힌 이영복 ⓒSBS 화면 캡처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CCTV에 찍힌 이영복 ⓒSBS 화면 캡처

절룩거리는 듯한 걸음걸이 보고 체포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교도소 생활을 오래 하면서 스스로 약하다고 느껴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술만 먹으면 강해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범행(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씨를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아울러 1월10일에는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거쳐 이씨의 머그샷 등 신상 정보를 공개했다.

이번 사건은 몇 가지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1차 살인 후 초동 대처만 빨랐더라도 두 번째 피해자는 얼마든지 살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경찰의 늑장 대처로 추가 살인 피해자가 발생했다. 일산에서 1차 살인이 일어난 후 경찰은 CCTV와 지문감식을 통해 범인의 신원을 파악했다. 그러나 이후 경찰은 추가 범죄 가능성에 대해 느슨하게 대처했다.

이씨의 이전 범행 패턴을 보면 돈이 떨어지면 여성 혼자 운영하는 다방 등에서 절도 행각을 벌이는 것이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교도소에서 출소한 후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았고, 직업도 없었다. 이전처럼 돈이 떨어지면 얼마든지 범행에 나설 수 있는 우범자였던 것이다. 실제 출소한 지 두 달도 안 돼 또다시 범행에 나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에는 없던 살인을 저질렀다. 범죄 행태가 한층 진화한 것이다. 범죄 특성상 한 번 살인을 저지르면 두 번째는 같은 형태의 범행을 답습한다. 이씨가 도주 과정에서 2차, 3차 범행에 나설 것은 불을 보듯 뻔했고,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도 높았다.

그런데도 경찰 수사는 범인의 신원을 파악하고도 제자리걸음만 계속했다. 경찰이 지체하는 사이에 이씨는 주거지인 파주 금촌 일대에 약 사흘간 머물렀다. 이곳에서 2차 범행에 나서 치킨집에서 음식을 먹은 후 카운터에 있던 돈통을 들고 달아났다. 자칫 치킨집 주인이 두 번째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이씨가 도주하면서 휴대전화나 신용·체크카드를 사용하지 않아 추적할 단서가 부족했고, 그가 대중교통도 좀처럼 이용하지 않고 주로 걸어다녔기 때문에 검거가 쉽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 수사기관인 경찰의 변명치고는 궁색하다. 범인의 추가 범행 가능성이 높지만 추적 단서가 부족할 경우에 할 수 있는 극약처방이 수배 전단을 만들어 공개하는 것이다. 공개수배는 범인의 얼굴과 신원을 공개해 추가 범죄를 막고 신속하게 검거하기 위한 수사기법 중 하나다. 요즘에는 인터넷과 SNS 발달로 인해 수배와 동시에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나가기 때문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다.

물론 공개수배에도 타이밍이 있다. 공개수배할 상황이 되면 최고의 범죄경보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얼마만큼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배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누구한테는 생사가 걸린 문제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공개수배 타이밍을 놓쳤다. 경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1차 살인 후 곧바로 공개수배에 나섰어야 한다. 그런데도 실제 공개수배는 사건이 일어난 지 6일 만에 이뤄졌다. 이처럼 공개수배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이씨가 파주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검거 가능성도 높아 공개수배를 잠정 연기했다고 한다. 이것은 범인을 추적할 단서가 부족해 검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던 것과 모순된다.

만약 1차 사건에서 확보한 CCTV 화면이 선명하지 않았다면 이전에 촬영한 머그샷을 활용할 수도 있었다. 실제 경찰은 1월5일 배포한 공개수배 전단에 이씨의 2022년도 머그샷을 넣었다. 2차 살인이 발생한 이후에도 경찰은 곧바로 공개수배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더욱 가관이다. 경찰은 언론을 통해 이때 찍힌 용의자 사진이 더욱 뚜렷하게 잘 보여 이를 전단에 반영하기 위해 5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때 선명한 사진을 확보했으면 곧바로 공개수배했어야 하는데도, 경찰은 3일이 지나서야 공개수배로 전환했다. 그사이에 3차 희생자가 나올 수 있었다.

경찰은 당연히 붙잡을 줄 알았고 공개수배하면 오히려 도망갈까 우려됐다는 이유를 댔다. 공개수배로 전환한 지 약 13시간 만에 범인을 검거한 것을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이다. 이씨가 붙잡힌 후  첫 번째 희생자인 A씨 유족은 “일찍 잡혔으면 그 사람(2차 피해자)도 안 죽었다”며 “동생이 죽었는데 또 한 사람이 죽었다”며 오열했다.

이영복 머그샷 ⓒ연합뉴스
이영복 머그샷 ⓒ연합뉴스

김상중 경감경찰 수사 총체적 부실 

서울경찰청에서 30년 넘게 강력 사건을 수사했던 김상중 전 경감은 이번 사건의 경찰 수사를 ‘총체적 부실’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경찰이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전 경감은 “먼저 우범자 관리에 구멍이 생겼다. 매뉴얼에는 이씨 같은 재범 우려가 높은 우범자 등은 관할 경찰서 차원에서 관리하게 돼있는데, 그게 안 됐기 때문에 추가 범죄를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1차 살인 이후 경찰의 대응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경감은 “유사 범행인데도 같은 장소(다방)에서 연이어 사건이 발생했다. 이씨의 범죄 대상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밤시간 여성 혼자 일하는 장소’다. 경찰은 순찰을 강화하고 이런 업주들에게 빨리 상황을 전파해 위험성을 알리고 수상한 사람이 오면 신고해 달라”고 했어야 한다. 이게 제대로 됐더라면 2차 피해자 또한 적절한 상황 대처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본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또 1차 범행 후 이씨가 일산~서울~양주~서울~강원도 등을 휘젓고 다닌 것에 대해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 전 경감은 “이번에 경기북부청 관할에서 두 건의 살인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그러면 경기북부청에 비상이 걸리고, 이웃한 서울에도 당연히 비상이 걸린다”며 “검문검색과 순찰을 강화하고 지하철이나 터미널 등에 경찰 인력을 늘려 신속하게 검거에 나섰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조치가 미흡했기 때문에 범인이 이 지역, 저 지역을 돌아다니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경찰관들이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해야 하고, 원인 분석을 철저히 해야 한다. 아울러 경찰의 미흡한 대처로 추가 희생자가 나온 것에 대해서는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간부가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번 이영복 연쇄살인은 경기도북부경찰청 관할인 일산서부경찰서와 양주경찰서 관내에서 일어났다. 경찰의 부실 대처로 추가 희생자가 발생했는데도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도형 경기북부경찰청장 등은 사과는 물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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