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보다 오래 살지만 아픈 채로 산다…‘건강 역설’에 빠진 한국 여성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4 12:05
  • 호수 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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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보다 오래 살지만 건강 상태 인식은 ‘나쁨’
주관적 건강, 남성 37%에 비해 여성 30.9%

대다수 국가에서 그렇듯이 우리나라 여성도 남성보다 오래 산다. 그런데 자신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10명 중 7명에 달한다. 건강이 좋지 않으면서도 장수하는 역설이 생기는데, 이를 ‘남녀 건강생존 역설(male-female health survival paradox)’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여성은 이 역설에 빠진 셈이다. 박현영 국립보건연구원장은 “여성의 건강은 여성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 나아가 국가의 건강 문제와도 직결된다. 여성 건강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건강을 증진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의 최근 여성 건강통계 자료를 보면,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은 86.6년으로 남성(80.6년)보다 6년이나 더 길다. 2023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건강통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 여성은 일본 여성(87.6년) 다음으로 장수한다. 

그만큼 건강하다는 의미일까.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30.9%에 불과해 남성(37%)보다 낮다. 이와 같은 ‘주관적 건강’ 수준은 2001년 47.8%에서 꾸준히 감소해 왔다. 주관적 건강은 의학적 진단 여부와 별개로 개인이 느끼는 신체적·정신적 상태를 의미하며 개인의 현재 건강 상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OECD 건강통계 자료에서, 한국 여성의 주관적 건강 수준은 45%다. 이는 일본(35%)보다 높은 편이지만 캐나다(89%), 미국(86%), 호주(86%), 이탈리아(70%) 등보다는 현저히 낮다.

김유미 한양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일반적으로 건강하지 않아서 더 빨리 사망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 오래 살지만 건강하지 않은 ‘남녀 건강생존 역설’ 현상이 관찰된다. 이 역설은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한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된다. 그런데 호주나 노르웨이 남녀의 기대수명 차이는 3~4년인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그 차이가 6년으로 꽤 길다. 그 차이를 더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여성 인구집단 안에서 지역과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건강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여성은 오래 살지만 아픈 채로 산다

실제로 우리나라 여성은 아프다. 통계청 자료(2022년 기준)를 보면 10대부터 60대 초반까지는 남성 인구가 여성 인구보다 약간 많다. 그러나 65세부터는 여성 인구가 남성 인구를 추월한다. 65세 이상 여성은 약 532만 명이고 남성은 약 417만 명이다. 여성 고령자가 늘어나면서 만성질환자도 여성에게 많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65세 이상 당뇨병 환자 중 여성은 약 140만 명이고 남성이 약 119만 명이다. 여성의 고혈압 유병률은 66%로 남성보다 높고, 골관절염 유병률도 여성이 46%로 남성의 약 3배다. 

암 발병률도 여성에서 증가세다. 여성 암 발병률(인구 10만 명당)은 2000년 197명에서 2020년 321명으로 늘어났다. 여성에게 가장 흔한 암인 유방암과 갑상선암은 물론 최근에는 자궁체부암(자궁내막암), 난소암, 폐암, 췌장암까지 증가하는 추세다. 유방암 발병률은 2000년 28명에서 2020년 77명으로 늘어났다. 빠른 초경과 늦은 출산 등 위험요인 때문이다. 갑상선암 발병률도 2000년 13.1명에서 2020년 80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2000년대 갑상선암 과잉 진단 논란 이후 잠시 감소하는 듯하다가 2015년 이후 다시 증가세를 탔다. 자궁경부암 발병률은 2000년 19.8명에서 2020년 9.6명으로 하락했다. 백신의 예방 효과로 보인다. 대신 자궁체부암과 난소암이 증가하고 있다. 같은 기간 자궁체부암 발병률은 3.4명에서 10.4명으로, 난소암 발병률은 5.8명에서 8.5명으로 높아졌다. 

남성에게 발생하는 암으로 오인되기 쉬운 폐암과 췌장암 발병률도 여성에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폐암 발병률은 2000년 15.5명에서 2020년 19.3명으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췌장암 발병률도 4.9명에서 8.2명으로 증가했다. 췌장암 증가세는 남성보다 훨씬 커, 남성이 1.1배 증가하는 동안 여성은 1.7배 늘어났다.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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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암 수검률이 하락세라는 점이다. 2022년 기준으로 여성이 암 검사를 받은 비율은 위암이 74%로 가장 높고 대장암 68%, 자궁경부암 60%, 유방암 59% 순이다. 그런데 유방암 수검률 59%는 2012년 70%에서 큰 폭으로 떨어진 수치다. 같은 기간에 자궁경부암 수검률도 66%에서 60%로 낮아졌다. 정규원 국립암센터 암등록감시부장은 “남성에게 발생하는 암으로 오인되는 폐암과 췌장암에 대한 여성의 인식 및 검진 제고 노력이 필요하다. 유방암과 자궁경부암 생존율은 OECD 국가 중 높은 수준이니만큼 검진 수검률 향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성보다 여성에게 잘 발생하는 질환인 골관절염과 골다공증 유병률은 남녀 차이가 크다. 국민건강영양조사(2019~21년)에 따르면 여성의 골관절염 발병률은 10.3%로 남성 3.8%의 3배를 넘는다. 골다공증 발병률도 여성은 7.1%로 남성(0.7%)보다 약 10배 차이를 보인다.

신체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 상태도 여성은 남성보다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스트레스 인지율은 32%로 남성(28%)을 웃돌고, 우울장애 유병률도 여성이 6.7%로 남성(4.8%)보다 높다. 이런 현상은 특히 젊은 여성에게서 두드러진다. 코로나19가 유행한 2020년 25~34세 젊은 여성의 우울장애 유병률은 12%로 모든 연령대에 비해 가장 높았고, 45~64세 중년 여성(4%)의 약 3배다. 또 여성 청소년의 우울증 경험률은 34%로 남성 청소년(24%)보다 높다. 박은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성의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을 두고 스트레스, 우울감, 자살을 예방하고 감소시킬 수 있는 전략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뱅크
비만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들 ⓒ뉴스뱅크

여성 근력운동 실천율은 남성의 절반 수준

여성 비만율은 나이가 어릴 때는 남성보다 낮으나, 나이가 들수록 남성보다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여성 비만율은 19~24세 18%에서 25~34세 20%, 35~44세 25%, 45~64세 32%로 점차 상승한다. 65세 이상에서는 남성(34.3%)을 추월해 37.5%까지 치솟는다. 특히 여성 청소년 비만율이 급등세다. 2010년 3.5%에서 2022년 8.5%로 높아졌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상승하는데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의 비만율은 12%를 넘어선다. 

이는 여성의 흡연, 음주, 신체활동 미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성 흡연율은 평균 6.8%다. 특히 25~34세 젊은 여성의 흡연율은 10.3%로 모든 연령 가운데 가장 높다. 여성 청소년 흡연율은 2011년 7.3%에서 2022년 3.4%로 낮아졌으나 전자담배 이용률은 그 기간에 1.7%에서 2.4%로 상승했다. 질병관리청이 최근 10년(2012~21년)간 음주 행태를 분석한 결과, 여성 고위험 음주율은 8.9%다. 고위험 음주자란 월 8회 이상, 한 번에 5잔 이상의 술을 마시는 사람을 말한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고위험 음주율은 남성은 하락세(25.1%→23.6%)이고, 여성은 상승세(7.9%→8.9%)다. 특히 20·30대 젊은 여성의 고위험 음주율은 10~13%로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다. 

여성의 신체활동은 과거보다 개선됐으나 여전히 남성에 비하면 매우 낮은 상태다. 여성의 근력운동 실천율(2019~21년)은 16.4%로 남성(32.7%)의 절반 수준이다. 그나마 2010~12년 12.5%에서 상승한 수치다. 특히 65세 이상 여성의 근력운동 실천율은 11.7%로 남성(31.7%)의 3분의 1 수준이다. 유산소운동 실천율도 여성은 43.6%로 남성(50.3%)의 87% 수준이다. 34세 이하 여성은 절반 정도가 유산소운동을 하지만, 고령자의 유산소운동 실천율은 28.1%에 불과하다. 여성 청소년의 고강도 신체활동 실천율은 남성 청소년보다 매우 낮다. 2022년 여성 청소년의 고강도 신체활동 실천율은 26.3%로 남성 청소년의 56% 수준이다. 여성의 고강도 신체활동 실천율은 중학교 3학년생일 때 34.8%에서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 16.7%로 급격히 하락한다.


교육과 소득에 따라 건강 행태 차이 뚜렷

여성 인구 중에서도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유병률과 건강 행태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국립보건연구원의 최근 여성 건강통계에 따르면, 여성의 소득이나 학력이 낮을수록 유병률이 대체로 높다. 가령, 여성 고혈압 유병률은 소득 수준이 하(下)인 경우 19%인데 그 수준이 상(上)일 때는 17%다. 또 중졸 여성의 고혈압 유병률은 24%인데 고졸은 12%, 대졸은 9%다. 여성 비만율도 교육 수준과 소득이 낮을수록 높다. 

직업군별로는 서비스직, 판매직, 생산직 근무 여성일수록 상대적으로 높은 흡연율과 음주율을 보인다. 업종별 여성 흡연율은 생산직 14%, 서비스판매직 9.8%, 무직 7.1%, 사무직 5.6% 순이다. 여성의 고위험 음주율도 서비스판매직 11.6%, 생산직 9.7%, 사무직 6.7%, 무직 6.1% 순이다. 

흡연, 음주, 신체활동 부족은 사망 또는 질병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예방할 수 있는 요인이다. 여성은 이런 원인을 제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성 인구집단에서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환경도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 남녀 건강생존 역설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김유미 교수는 “예를 들어 여성에게는 통증을 수반한 근골격계 질환이 흔하므로 기능 유지나 움직임 보존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스스로 건강을 돌보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또 사회적으로도 노동시간을 줄이는 등 자신의 건강을 돌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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