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돈 받으려면 신용점수 낮춰야죠”…카드론 받는 자영업자 속내는?
  • 정윤성 기자 (jys@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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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자금 대출 위해 의도적으로 신용도 하락시켜
“‘카드론+현금서비스+리볼빙’ 3종 세트면 신청 가능”
대출 문턱 낮은 소진공 ‘직접대출’에 소상공인 몰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음식을 배달하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음식을 배달하는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내놓은 정책자금을 받기 위해 일부 소상공인들이 신용점수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리는 행태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는 29일부터 신청을 받는 ‘저신용 소상공인 자금’을 받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소상공인진흥공단(소진공)에서 진행하는 ‘직접대출’인데다 신청 문턱이 낮다는 점에서 한 푼이 아쉬운 소상공인에겐 매력적인 상품이다. 하지만 경영 안정 자금이라는 지원 취지와는 다르게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6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오는 29일부터 소상공인진흥공단을 통해 ‘저신용 소상공인 자금’ 신청이 시작된다. NICE평가정보 개인신용점수(NCB) 744점 이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연 금리 5.49%, 최대 한도 3000만원을 5년간 지원한다. 민간금융기관을 통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저신용 소상공인에 경영 안정 자금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해당 정책자금은 시중 금융기관에 비해 신용도 대비 낮은 금리와 높은 한도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상공인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중저신용자 정책금융상품인 햇살론15의 금리가 연 15.9%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소상공인에겐 훨씬 좋은 조건이다.

대출 승인 문턱이 다른 상품보다 낮다는 점도 장점이다. ‘저신용 소상공인 자금’은 소진공에서 직접 접수와 심사·평가를 진행해 시중 금융기관보다 대출 심사도 덜 까다롭다는 평가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점에서 소상공인 사이에서 직접대출 이른바 ‘직대’라 불리며 관심이 높다.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게시된 신용점수 하락 문의 글 ⓒ네이버 카페 캡처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게시된 신용점수 하락 문의 글 ⓒ네이버 카페 캡처

“대출 신청 커트라인 30점 넘어…리볼빙 받으면 점수 떨어질까요?”

그러나 이러한 점으로 인해 대출 신청 자격인 신용점수 744점을 넘는 소상공인들을 중심으로 고의적으로 신용점수를 낮추는 방법을 공유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회원 수 148만 명의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해당 정책자금의 커트라인을 맞추기 위한 각종 편법을 문의하는 게시글이 여럿 올라오는 상황이다. 한 게시글에선 “‘카드론+현금서비스+리볼빙’ 3종 세트면 신용점수가 쉽게 떨어진다”며 조언하는 모습도 다수 포착됐다.

최근 신용점수를 떨어뜨릴지 고민했다는 자영업자 A씨는 “신용점수 30점 정도만 내리면 커트라인(744점) 아래로 떨어진다”며 “신용점수는 나중에 올릴 수 있지만, 당장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 정도 조건으로 대출 받을 기회는 지금뿐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의도적 신용점수 하락 행위는 지난해에도 벌어진 바 있다. 정부가 지난해 1월 8000억원 규모의 저신용자 대출인 ‘소상공인·전통시장 지원 자금’을 내놓자, 신용점수를 일부러 떨어뜨리려는 사람이 속출한 것이다. 당시 ‘소상공인·전통시장 지원 자금’은 ‘업력 90일 이상’이란 기준이 붙었지만 신용점수 744점 이하 소상공인에게 연 2.0% 고정금리, 최대 3000만원 한도라는 좋은 조건이라 상당수 많은 소상공인의 신청이 쇄도했다.

해당 대출을 받기 위해 일부로 신용점수를 낮추는 경우가 속속 드러나자 정부도 이번 ‘저신용 소상공인 자금’의 대출 조건을 다소 강화했다. 중기벤처부 관계자는 “이번 저신용자 대출의 경우 일반 경영안정 자금보다 금리를 1.0%포인트 높게 설정해, 점수를 고의로 떨어뜨리는 요인을 제거한 상태”라며 “현 정책에서도 신용점수를 떨어뜨리려는 자영업자들은 금리 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중부센터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중부센터의 모습 ⓒ연합뉴스

불이익 크다는 경고에도 아랑곳 없어…“그만큼 어렵다는 방증”

실제로 또 다른 소상공인 정책자금인 일반 경영안정 자금의 경우 대출 금리와 한도가 각각 연 4.49%, 최대 7000만원으로 ‘저신용 소상공인 자금’보다 조건이 좋다. 지원대상도 업력 3년 미만의 소상공인에서 소상공인이면 누구나 대출을 신청할 수 있도록 완화했다. 다만 ‘저신용 소상공인 자금’과 다른 부분은 은행권을 통한 대리대출 방식이라는 점이다.

직접대출은 소진공에서 차주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대출을 실행하기 때문에 진입문턱이 낮은 편이다. 신용점수 기준만 충족하면, 코로나로 인해 매출이 제한되거나 기존 부채가 많은 자영업자도 쉽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대리대출은 금융기관에서 대출 심사와 실행을 하고 있다. 이에 절차가 까다롭고 대출이 좌절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소상공인들의 주장이다.

대출을 받으려 신용점수 하락까지 불사하는 행태에 대해 정부는 향후 금융거래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경고를 하고 나선 상태다. 소진공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이 같은 현상을 우려해 시행 공고와 대출 안내 과정에서 해당 부분에 대한 불이익을 충분히 고지했다”며 “신용점수가 낮아지는 순간 향후 정책 지원을 비롯해, 은행 대출 등 금융거래에 제약이 생긴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자영업자들이 신용점수를 떨어뜨리는 상황까지 온 데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이 그만큼 유동성이나 자금 확보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이미 코로나19를 겪으며 매출 상황과 기존 대출 등으로 한도가 목 끝까지 찬 자영업자들이 고육지책으로 신용점수 깎기에 나서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도 “신용도를 기준으로 삼아 저신용자 대상의 저리 정책 자금을 대출해주다 보니 어려운 소상공인들 입장에선 신용점수를 떨어뜨리고 싶은 유인이 계속 발생하는 것”이라며 “악순환이 반복되는 정책에서 벗어나 다른 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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