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태영 사태’ 만든 부실 PF 추적… 건설·시행사, 작년에 2000억원 못 갚아 땅 내놨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4.01.23 07:35
  • 호수 1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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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된 아파트도 통째로 경매에 나올 수 있다”…매출 2000억원대 전남 중견 회사는 1억원도 못 갚아
2023년 개시 경매 중 제2금융권이 채권자인 토지 3240건…그중 146건의 채무자가 건설·시행사

태영건설은 워크아웃으로 한 고비를 넘겼지만, 건설 업계의 유동성 위기는 이제 시작임을 보여주는 지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이번 워크아웃의 신호탄이 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다. 130조원가량의 PF 대출잔액 중 절반 이상이 위험하다는 분석이 나온 가운데, 이미 일부 PF 사업장은 최후의 수단인 공매 또는 경매에 몰린 상황이다. 시사저널이 지난해 경매에 나온 건설사·시행사의 토지 146건을 분석한 결과, 금융권이 2000억원이 넘는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권의 PF 대출잔액은 작년 상반기에만 133조1000억원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 가운데 액수가 가장 큰 금융기관은 43조7000억원을 기록한 보험사였다. 증권사는 대출잔액이 5조5000억원으로 비교적 적었지만 연체율이 17.28%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태영건설의 채권단에도 포함된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의 경우 연체율이 각각 4.61%, 1.12%로 1%대 이상을 기록했다. 은행의 연체율인 0.23%와 비교하면 관리가 허술한 편이다.

나아가 연체가 장기화돼 공매·경매가 진행 혹은 예정된 PF 사업장은 지난해 9월말 기준 120곳으로 집계됐다. 3개월 전인 6월말(100곳)보다 20% 증가했다. 금감원 측은 해당 PF 사업장의 목록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 관계자는 “자금난에 빠진 채무자의 사업 진행을 방해할 수 있고 경매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태영건설 PF 사업장 중 우발채무가 대출 한도에 비해 가장 높은 곳인 서울 강서구 ‘마곡CP4개발사업’ 현장.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오른쪽 작은 사진) ⓒ시사저널 최준필
태영건설 PF 사업장 중 우발채무가 대출 한도에 비해 가장 높은 곳인 서울 강서구 ‘마곡CP4개발사업’ 현장과 (오른쪽 작은 사진)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 ⓒ시사저널 최준필

경매 플랫폼 활용해 미공개 PF 사업장 조사 

하지만 PF 사업장을 특정할 수 없을 뿐, 그곳으로 추정되는 부동산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법원이 각각 공매·경매 물건을 공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는 경매 정보 플랫폼 지지옥션을 활용해 2023년 한 해 동안 경매가 개시된 부동산 중 보험사, 증권사,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이 주채권자인 물건을 모두 수집했다. 보험사는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의 정회원사 37곳을 기준으로 삼았다. 증권사는 금융투자협회 정회원사 61곳, 저축은행은 저축은행중앙회 정회원사 79곳, 상호금융은 지역 단위조합 4곳(농협·축협·신협·수협)과 새마을금고 등 5곳을 각각 검색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후 수집 물건 중에서 토지를 따로 추렸다. PF 중 부실 위험이 커서 경매 가능성이 높은 부동산이 브리지론으로 대출받아 산 토지이기 때문이다. 본PF 전 단계인 브리지론은 시행사 또는 건설사가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이용한다. 토지담보대출과 흡사하지만 사업성을 보고 돈을 빌려주기 때문에 리스크가 더 크다. 그래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노리는 2금융권에서 주로 취급한다.

수집한 토지를 모두 모아보니 총 3240건이었다. 지난 한 해 동안 개인 또는 법인의 채무 불이행으로 2금융권이 경매에 내놓은 토지 건수가 이만큼이란 뜻이다. 이 중에서 채무자가 건설사 혹은 시행사로 확인된 토지를 뽑아봤다. 그 결과 146건으로 압축됐다. 해당 건수는 PF 사업장일 가능성이 높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건설사나 시행사가 개발 외의 목적으로 토지를 매입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면서 “다만 PF 사업장은 신탁사가 공매로 자체 처분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고 말했다. 공매 물건까지 감안하면 실제 매각을 앞둔 토지가 더 많을 것이라는 얘기다.

상호금융이 압도적…농협 채권만 ‘1465억’

146건의 경매 토지 중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 채권자는 상호금융이다. 4건만 제외하고 모두 단위농협과 농협자산관리(농협의 부실자산을 매각하는 특수법인) 및 축협·신협·수협 등이 차지했다. 각 기관의 채권 청구액을 살펴보면 농협·농협자산관리가 1465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신협 442억원, 축협 127억원, 수협 88억원 등 순으로 나타났다. 총액은 약 2186억원이다. 태영건설도 단위조합의 돈을 갖다 썼다. 워크아웃을 신청한 지난해 12월27일 기준 태영건설이 신협중앙회를 비롯해 단위신협 53곳으로부터 빌린 돈은 약 597억원에 이른다.

경매 토지 146건을 소재지별로 구분하면 경기 지역이 38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 외에 경북(22건), 경남(14건), 제주(13건) 등이 뒤를 이었다. 서울과 인천은 각각 4건, 2건이었다. 수도권보다는 지방에 PF 부실 위험이 몰려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지방 상호금융이 대출을 쉽게 내준 탓도 있지만 지방의 분양률이 저조한 영향도 있다. 국토교통부의 ‘지역별 주택 미분양 현황’에 의하면 세종을 제외한 16개 지자체 중 2022년 미분양 호수가 1000호 미만인 지역은 서울과 광주 둘뿐이었다. 충남은 전국 평균 미분양 호수(4256호)의 2배에 달하는 8509호로 집계됐다.

단일 경매 기준으로 가장 청구액이 큰 토지는 제주 서귀포시의 1만3200여㎡ 규모의 전(田)이다. 단위농협 4곳이 모여 돈을 댔지만 결국 채무자인 지역 건설사가 감당하지 못해 지난해 8월 경매를 결정했다. 여기에 청구된 채권액은 78억원이다. 경기도의 S건설사는 중견·중소 건설사가 모인 법정단체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원사다. S사는 신협으로부터 대출받아 서울 종로구와 성북구 두 곳의 대지를 매입해 건축을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결국 빚을 갚지 못해 작년 12월 일제히 경매가 결정됐다. 신협은 두 토지에 61억원을 청구했다.

지역의 유력 건설사도 경매 채무자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12월27일 시공능력평가 119위의 전남 소재 건설사 일군토건이 소유한 4150㎡짜리 전남 임야에 대해 경매가 개시됐다. 채권자인 신협이 청구한 금액은 1억원에 불과했다. 작년에 매출 2260억원을 올린 중견 건설사가 1억원을 못 갚아 자투리 땅마저 포기한 셈이다. 전조는 지난해 6월부터 보였다. 이때부터 해당 토지에 은행과 지자체, 신용보증기금 등이 20여 차례 압류를 건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일군토건이 진행하던 PF 사업장인 인천 ‘숭의역 엘크루’와 충남 ‘스위트클래스 강경’ 등도 시공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군토건 내선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착신이 금지돼 있었다. 회사 홈페이지는 문을 닫았다.

채권자는 토지를 경매에 내놓아도 대출금을 전액 회수하기가 쉽지 않다. 토지는 주택보다 수요가 적고 활용에도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특히 전·답·과수원 등은 농지취득자격증명원을 얻지 못하면 낙찰받더라도 양도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브리지론 단계에서 경매에 나온 토지는 사업성이 낮은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더욱 경쟁력이 떨어진다. 지지옥션 통계를 보면 2023년 토지의 월평균 낙찰가율은 63.13%로 공업시설(75.61%), 주거시설(75.28%), 상업시설(70.73%)에 비해 낮았다. PF에 손을 댄 금융권과 회사 모두 휘청거릴 판이다.

 

올 들어 건설사 13곳 폐업…200위권도 휘청

중소 건설사 사이에선 이미 곡소리가 나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불과 2주 만에 전국 종합건설사 13곳이 폐업 처리됐다. 이 중 11곳이 ‘사업 포기’를 이유로 들었다. 또 법원에 의하면 새해 들어 건설사 4곳이 법정관리 신청 후 포괄적 금지명령(회생절차 전 자산동결)을 받았다. 이 중에는 시공능력평가 전국 176위의 인천 영동건설과 179위의 울산 부강종합건설도 포함됐다. 부강종합건설은 직전까지 3년 연속 울산에서 시공능력 1위를 차지한 우량 기업이었다.

업계 전망은 더욱 어둡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1월5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부동산 PF 대출의 최대 부실 가능 규모가 70조원 이상이라고 밝혔다. 전체 PF 대출잔액인 약 133조원의 절반이 넘는다. 김정주 연구위원은 “경매 등을 통한 회수 금액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다소 극단적인 예상치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PF 만기 연장 건 대다수가 수익성이 상실됐고 회복도 이뤄지지 않은 사업장으로 구성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황규석 비젼법률경매 대표는 “올 하반기부터 중소 건설사 위주로 PF 사업장이 경매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올 것”이라며 “토지만이 아니라 준공된 아파트도 미분양이 뜨면 PF 대출금을 못 갚으니 통째로 경매에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1월11일 태영건설 워크아웃 개시를 결정한 채권단은 회사의 재무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실사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주안점은 태영건설이 PF로 건설 중인 주택 등 사업장 60곳에 대한 처리 방안으로 꼽힌다. 본PF에 들어섰거나 분양률 70%가 넘어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 사업장은 태영건설에 맡길 예정이다. 반면 브리지론에 머물러 있는 사업장 18곳 중 일부는 공매·경매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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