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딸, 母 죽음 지켜봤다” 인천 스토킹 살인범 ‘25년형’에 유족 울분
  • 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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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보복살인 가해자에 징역 25년 선고…검찰은 ‘사형’ 구형
유족, 피해자 딸이 범행 장면 목격 안 했다는 재판부 판단에 반발
“주변 맴돌다 살인한 가해자, 출소 후 조카에 똑같은 짓 저지를 지도”
인천의 한 아파트 복도에서 스토킹하던 전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30대 남성이 7월28일 오전 인천 논현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의 한 아파트 복도에서 스토킹하던 전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30대 남성이 7월28일 오전 인천 논현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헤어진 여성을 스토킹하다 6살 딸과 모친이 보는 앞에서 40㎝ 회칼로 잔혹 살해한 ‘인천 스토킹 살인’ 사건 피고인에 징역 25년이 선고됐다. 유족은 사망한 피해자의 딸이 범행 장면을 목격하지 않았다는 재판부 판단에 반발하며 검찰에 즉각 항소를 요청했다.

인천지법 제15형사부(류호중 부장판사)는 18일 오후 2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보복살인 및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A씨(31)에게 징역 25년형을 선고했다. 또 120시간 스토킹 처벌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15년간 위치추적 전자 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출근길에 A씨로부터 공격 받고 저항하지 못한 채 생명을 잃었다”며 “범행 당시 두려움과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의 모친은 A씨를 말리는 과정에서 손가락과 손목에 상처를 입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모친이) 사건 당시 장면을 떠올리면 정신적 고통이 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찾아갔다고 하지만 사망 전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도 재차 범행했고 사과를 들은 뒤 후련한 감정을 느끼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범행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피해자의 어린 자녀가 지켜보는 앞에서 범행한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해 가중요소로 참작하지는 않았다. 또 범행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확인되지 않아 검찰이 제시한 ‘신당역 살인사건’과는 별개라고 봤다.

재판부는 “A씨가 살인을 저지른 후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하려고 하지 않았고, 자신이 지은 죄를 처벌받겠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다수 보복범죄 사안과 형평성을 고려하면 A씨의 생명을 박탈하거나 사회로부터 영구 격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A씨 죄명에 일반살인보다 형량이 더 센 보복살인죄를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했다. 이후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A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지만, 이날 선고 공판에서는 유기징역이 내려졌다.

유족이 공개한 A씨가 생전 피해 여성을 폭행한 모습 ⓒ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전 연인이 휘두른 흉기에 잔혹 살해된 피해자가 생전 가해자로부터 당한 폭행으로 왼쪽 팔 부위가 시퍼렇게 멍 들어 있다. 유족은 해당 사진을 공개하며 살해범이 오랜 시간 망자를 스토킹하고 폭행하는 등 괴롭혀 왔다고 호소했다. ⓒ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유족 “출소하고 조카에게 해코지하면 어떡하나”

선고 공판을 마친 유가족은 시사저널과 만나 “출소하면 우리 조카(피해자 딸)가 몇 살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면서 “동생을 못 지켜줬으면 조카라도 지켜야 하는 게 맞다”고 흐느꼈다.

이어 “A씨가 5일 정도 동생 주변을 맴돌면서 살인을 저질렀는데 A씨가 나오게 되면 조카한테 똑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며 “이 때문에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A씨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조카를 챙겨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호소했다.

또 재판부가 범행 장면을 피해자 딸이 보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유가족은 “할머니가 칼에 손이 찔린 채로 아이를 감싸 안고 들어갔기 때문에 아이가 인지를 못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며 “최근 아이가 잘 놀다가 갑자기 할머니에게 ‘우리 엄마 죽었어’라고 세 번을 외쳤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엄마가 죽는 것을 봤는데 왜 어른들은 나에게 아무 이야기도 해주지 않냐’는 말을 분명히 했다”면서 “어떤 판단으로 아이가 인지하지 못한다고 감형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재판장에는 여자친구를 감금해 강제로 머리카락을 밀고, 얼굴에 소변을 본 ‘바리깡 사건’ 피해자 가족들도 함께 나서 유가족에 힘을 보탰다.

바리깡 사건 피해자 부친은 “형량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 앞으로 유사한 사건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런 식의 판결은 너무 약하다”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위한 법이 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한편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 가해자 A씨는 지난해 7월17일 인천 남동구 아파트 복도에서 옛 연인이었던 피해자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자 범행을 말리던 모친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양손을 다치게 했다.

피해자 유족은 가해자에 엄벌을 내려 달라며 사건 발생 후 7개월 동안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건에 대한 관심과 탄원서 작성을 호소해 왔다. 유족은 시민의 도움으로 받은 4만7000건의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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