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15만 명이 6000만원씩 손해 본다…홍콩ELS 손실 ‘패닉’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4.01.2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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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H지수는 왜 ‘나락’ 갔나…전날 52주 최저치 기록
연계 ELS 상반기 10조원 만기…최대 6조원 손실 전망
中부동산 침체에 경기부양책도 요원…“반등 쉽지 않아”

새해 들어 홍콩 증시가 급락하고 있다. 홍콩H지수(HSCEI‧항셍중국기업지수)는 ‘심리적 저항선’으로 불리던 5000선마저 깨졌다. 이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의 손실율은 60%에 달해, 지금까지 2300억원의 원금 손실이 확정됐다.

문제는 앞으로도 H지수가 반등하긴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라, 손실금액이 최대 6조원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홍콩 ELS 상품에 가입한 국내 투자자는 15만여 명으로 추산되는데, 대부분이 투자금의 절반도 회수하지 못할 전망이다.

홍콩H지수가 새해 들어 10% 넘게 추락해 전 세계 하락률 1위를 기록했다. 사진은 1월23일 중국 홍콩증권거래소 앞 광장의 모습 ⓒ 로이터 = 연합
홍콩H지수가 새해 들어 10% 넘게 추락해 전 세계 하락률 1위를 기록했다. 사진은 1월23일 중국 홍콩증권거래소 앞 광장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홍콩ELS 가입자 15만여 명…손실율은 60% 육박

23일 홍콩증권거래소에서 홍콩H지수는 5100선을 가리키고 있다. 전날보다 2% 소폭 반등했다. 전날 종가는 5001.95로, 5000선 문턱을 간신히 지켜냈다. 전날 장중엔 4980.30까지 떨어져 52주 최저치를 기록했다. H지수는 새해 들어서만 11% 넘게 급락해, 전 세계 주가지수 가운데 가장 저조한 수치를 보였다.

홍콩H지수가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ELS 상품의 손실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상품 구조상 지수가 가입 당시 기준가격 대비 65~70%는 돼야 원금이라도 보전할 수 있는데, 현재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만 지난 19일까지 2296억원의 손실이 확정됐다. 전체 손실율은 52.8%다.

손실금액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H지수가 계속해서 떨어지는 데다, 향후 만기가 도래하는 상품이 더 많아서다. 유안타증권 데이터에 따르면, 1월 약 9200억원, 2월 1조6500억원, 3월 1조8200억원, 4월 2조5600억원의 만기가 도래한다. 날짜별로 보면, 하루 만기 도래액이 2000억원을 넘는 날이 7일이나 된다. 여기에 손실율 60%를 적용하면, 이 7일엔 매일 1200억원씩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오는 6월 상반기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상품의 규모는 10조2000억원 수준으로, 지수가 현 추세를 유지하면 상반기 손실금액만 6조원대로 늘어난다.

1인당 손실금액도 수천만원 대에 달할 전망이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5대 은행을 통해 ELS 상품에 가입한 사람 수는 15만4300여 명이다. 합계 잔액은 14조6480억원으로, 단순 계산하면 1인당 평균 가입 금액은 약 9500만원이다. 여기에 손실율 60%를 적용하면, 15만여 명의 가입자 전부가 평균 5700만원가량을 손해 본다는 계산이 나온다.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는 모습 ⓒ 연합뉴스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증시 추락하는데 경기부양책 미루는 中정부…“증시 더 떨어진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커진 근본적인 이유는 H지수가 예상 외로 빠르게 추락했기 때문이다. 현재 만기가 도래한 ELS 상품의 가입 시점인 2021년 당시 H지수는 1만2000대였다. 홍콩 증시는 지정학적 특성상 중국 경기 흐름을 반영하는 동시에 글로벌 시장 분위기에도 영향을 받는 특색을 지닌다. 2021년 당시에는 코로나 이후 유동성이 풀려 전 세계 증시가 활황이었던 때고, 중국은 코로나 이후 걸어잠궜던 문을 다시 열기로 하면서 경기 회복 기대감을 키운 때였다.

그러나 중국의 최대 부동산 개발기업 헝다의 파산 위기 사태를 시작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헝다는 2021년 9월부터 막대한 부채 이자를 갚지 못해 디폴트 위기에 처했으며, 결국 지난해 8월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이후 다른 부동산 기업들도 악영향을 받았으며, 연쇄 금융 위기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또 미‧중 갈등의 일환으로 중국 정부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텐센트, 알리바바 등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에도 나섰다. 이에 이들 기업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H지수는 폭락으로 이어졌다.

김민규 한국은행 홍콩주재원은 “2021년 이후 중국 부동산 기업 이슈가 부각되고 중국 정부가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를 시작하면서 H지수가 빠르게 하락했다”며 “향후 중국 부동산 시장이 단기간 내 회복할 가능성이 크지 않고 최근 중국 정부의 첨단산업 육성 정책도 홍콩증시와는 직접적 관련성이 크지 않아 H지수가 극적으로 예전 수준까지 회복하진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분위기다. 리창 총리는 지난 16일 다보스포럼에서 “중국은 단기적 성장 회복을 위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쓸 생각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2일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자본시장 현황을 보고받고서는 시장 안정과 투자심리 회복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구체적인 대책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홍콩 증시에 증시안정 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설화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올해는 중국 경기 신뢰 회복의 중요한 해라 적극적 재정확대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는 게 매우 중요한데, 연초의 정책 기조는 오히려 중장기 저성장 우려를 가중시켰다”며 “앞으로도 정책 신뢰 회복은 역부족일 것으로 보여 중국 증시 반등 모멘텀은 강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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