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이냐 파울이냐’ 전문가 3인이 바라본 남북경협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8 08:00
  • 호수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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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회담에 남북경협 기대감 ‘후끈’
전문가 “준비하지 않으면 ‘남 좋은 일’ 될 수 있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되면서 남북 경제협력이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진앙으로 부상했다. 증권가에선 현대건설을 비롯한 ‘남북경협주’들이 들썩이기 시작했고,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은 경협을 대비한 태스크포스(TF) 꾸리기에 한창이다. 남북경협이 이뤄만 진다면 ‘대박’이라는 기대감이 이 같은 변화를 낳고 있다. 과연 남과 북이 손을 잡는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홈런’을 칠 수 있을까. 일각에선 이 모든 장밋빛 청사진은 근거 없는 허상으로, 북한 정치의 불안정성과 폐쇄성 탓에 경협이 실익 없는 ‘파울볼’에 그칠 것이란 비관론도 제기된다.

시사저널은 국내 대북(對北) 관련 전문가 3인을 만나 남북경협에 대한 진단을 들어봤다. 이태호 삼일회계법인 남북투자지원센터장(부대표)은 국내 회계업계에서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다. 2008년 회계법인 중에서는 처음으로 ‘대북투자지원팀’을 만들었으며 2015년에는 대북투자지원팀을 ‘남북투자지원센터’로 확대 개편해 북한 투자에 대한 자문 및 컨설팅 등을 수행하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 북한투자팀 소속의 최재웅 변호사는 이른바 ‘중국통’이다. 중국 인민대에서 중국법 석사학위를 받고 중국 현지 로펌에서 근무했다. 지난해 7월부터는 통일부 ‘교류협력 법제도 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활동 중이다. 박정진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극동문제연구소에서 한반도 평화와 북한·통일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왼쪽부터)이태호 삼일회계법인 남북투자지원센터장, 최재웅 법무법인 바른 북한투자팀 변호사, 박정진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시사저널 최준필·임준선
(왼쪽부터)이태호 삼일회계법인 남북투자지원센터장, 최재웅 법무법인 바른 북한투자팀 변호사, 박정진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시사저널 최준필·임준선

변수 많은 남북경협, 과거와는 분명 다르다

남북경협이 화두다. 남북경협이 곧 재개될 수 있을까.

이태호(이하 이) “회담을 앞두고 미국도 일정 부분은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긍정적인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진전된 형태의 액션과 프로세스를 제시하면 미국도 일정 부분의 제재 완화 등을 제시할 수 있다. 과거 중단된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의 재개를 예외적으로 인정해 주는 것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최재웅(이하 최) “합의문에 대북제재 완화와 관련된 내용이 얼마나 담길 것인지 여부가 관건이다. 북한도 미국이 제재를 어느 정도 풀어주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카드를 (다르게) 내놓을 것이다. 최근 실무자들 사이의 사전 협의 결과가 나쁘지 않아 보인다. 최소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재개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박정진(이하 박)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조율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을 우리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보아, 북한이 원하는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선언,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와 제재 완화 부분은 장기적 호흡이 필요해 보인다. EU가 북한을 잠정 테러지원국으로 결론 내린 것을 보더라도 이번 회담에서 바로 성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핵을 담보로 한 경제협력을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을까. 대화에 나선 후 경제적 실익을 취한 뒤,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꿨던 게 지금까지 북한이 보여온 모습이다. 
 

“김정일 시대의 북한과 김정은 시대의 북한을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가 경제다. 김정은 정권에서는 사실상 시장을 통한 경제 발전을 용인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 정부가 주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게 되면서 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장마당(시장)이다. 현재 북한에는 이런 시장이 400~500여 개에 이른다. 주목할 점은 장마당을 경험한 북한의 젊은 세대나 시장 활동을 하는 이들은 남한 등 외부에 대한 정보에 밝을 뿐 아니라 북한 정치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고 자신들이 시장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경제적인 부를 지키고자 하는 열망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북한 당국은 이들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다.”

“김정은 위원장 시대에는 북한이 가진 내부적 힘을 경제에 집중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이 보인다. 이를 위해 북한이 위협이 될 수 있는 미국 등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중국이 늘 이야기하듯 자국 주변이 안정돼야 군사 분야에 신경을 덜 쓰면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 같다.”

“당장 경협이 재개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예컨대 제재 리스트만 봐도 상당한 수의 품목이 수출 금지가 되어 있는 상황이다. 경협을 너무 서두를 경우 오히려 남북 간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날 위험이 있다. 특히 기업은 제재 해제 범위를 살펴보고, 제재 품목에 해당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남북경협이 재개된다면 과거의 남북경협과 어떤 차이를 보일까. 남북경협을 돈이 아닌 정치적 이해 때문에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새로운 남북경협은 적어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북·미 회담에 나서는 이유는 단순히 남북경협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체제유지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범위 내에서 본격적으로 시장경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물론 법적, 제도적 미비점은 있다. 다만 중국·러시아·미국 등 해외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다. 투자의 국제화를 통해 정치적 리스크는 낮아질 수 있다.”

“남북경협이 경제적 유인보다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에 추진되는 것이라면 그러한 남북경협은 바람직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단기적인 경제적 유인과 장기적인 경제적 유인이 서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득보다는 실이 클 수 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득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관계 회복, 중국과 신협력 구상은 물론 미국과도 경협에 대한 구상과 범위를 조심스럽게 조율할 필요가 있다. 과거와는 다르다. 동북아의 관련 국가들은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달아올라 있으며 자국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계획 실현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사전 조율 없이 경협을 진행할 경우 심각한 불협화음과 경제적 충돌을 경험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경협 전에 외교적 조율이 필요해 보인다.”


‘코리아 패싱’ 대비 필수…섣부른 투자 금물

전문가 3인은 남북경협 재개를 무조건적으로 낙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변수가 많아서다. 북한이 경제 진입장벽을 낮춘다고 해도 우리나라가 모든 수혜를 독점할 수도 없다. 인접국인 중국을 비롯한 미국·러시아 등이 우리나라를 제치고 북한의 ‘제1 경협 파트너’가 되기 위해 경쟁을 펼치게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다만 이는 곧 북한이 꽤 괜찮은 투자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적어도 북한과의 경협이 ‘독이 든 성배’는 아니란 얘기다.

일각에선 북한이 경제를 개방하더라도, 한국이 정작 수혜를 입지 못하는 ‘코리아 패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면 남한 기업에 많은 투자 기회가 있을 것으로 쉽게 생각한다. 실제로는 인접해 있는 중국과 러시아, 그중에서도 중국의 투자가 상당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나진·선봉 개발사업에도 참여해 나진항 부두 일부의 사용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북제재 이전에 상당한 양의 중국 공산품이 북한 시장에 유통되기도 했다. 러시아나 일본, 싱가포르 등의 자본도 관심을 갖고 있어 북한 개방 시 다양한 형태의 외국 자본이 투자할 방법을 찾을 것으로 생각된다.”  

“판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미국은 북한의 개방과 관련해 분명 자신들의 이익을 계산하고 이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중국은 남한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북한의 접경국이며, 동일한 사회주의 국가다. 또한 중국에는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문화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백만 명 이상의 조선족 동포들이 존재한다. 자본력은 남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하다. 남한이 이런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지점은 결국 북한의 개방 이전에 실제로 얼마나 북한과 교류하고 신뢰를 쌓아 놓았느냐에 달려 있다.”

“코리아 패싱을 두려워하기보다, 성공적인 경협을 위해 주변국과 협의체로서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코리아 패싱은 오히려 국내 경제의 위축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다. 동북아 주변 국가들을 남북경협의 협력 대상으로 보고 북측과 섬세히 논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남북 간 더 잦은 접촉, 왕래가 코리아 패싱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과 손을 잡게 된다면, 국내 기업이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형태의 북한 투자는 지양해야 한다. 냉철한 분석과 준비로 북한 투자와 비즈니스를 준비해야 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보면서도 남한과 북한이 균형 있게 상생 발전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대북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 기업과 손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세계 곳곳에서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만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급격한 변화는 남한도 북한도 모두 감당하기 어렵다.”

“북한과의 경협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 일방적으로 정한 기업 보고서나 정책으로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가야 할 대상’으로서 긴 호흡으로 북한을 바라봐야 한다. 자본주의에 입각한 경협 연구 보고서 등에 의존해선 안 된다. 지속적으로 남북 경제 담당자가 만나고 필요한 부분을 재검토하는 식의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관광지구 건설현장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연합뉴스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관광지구 건설현장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연합뉴스

북한의 ‘독재’가 투자자에겐 ‘매력’인 이유

규제에 시름하는 IT·공유기업, 북한 ‘톱다운’ 구조가 장점 될 수 있어

전문가들은 북한이 경제 진입장벽을 낮추는 순간, 뜨거운 ‘투자처’로 각광받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북한의 ‘톱다운’(top-down·상명하달식) 통치구조가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조건으로 부상할 것이란 얘기다. 특히 각종 규제로 시름하는 공유경제 사업체나 정보통신(IT) 기업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비(非)민주적인 북한 사회가 괜찮은 ‘테스트 베드’로 보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이태호 삼일회계법인 남북투자지원센터장은 “톱다운 방식의 정책 결정과 실행이 북한의 정책적 특징이자 장점이다. 현재의 우리 사회는 각종 규제와 이익집단 간의 갈등으로 인해 4차 산업분야, 공유경제 등으로의 혁신에 제약을 받는 경우가 있다. 반면 북한은 이러한 제약에서 자유롭다”며 “당국 간 협의가 잘되고, 필요한 재원 조달 문제만 해결한다면 (북한이) 빅데이터와 ICT 등을 결합한 4차 산업과 공유경제의 혁명지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최재웅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남북경협에서 북한이 가진 특징, 예를 들어 중앙집권성, 통제성, 신속한 정책 추진, 저렴한 토지보상비용 등을 활용해 북한을 4차 산업의 거대한 실험장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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