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와 디자인 영역 넘나들며 세계를 홀리다
  • 심정택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23 10:05
  • 호수 178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시 기획자 김대환의 아트 연대기 주목
세계 미술의 용광로 런던에 둥지 틀고 영향력 확대

미술 기획자로서 김대환(Jason Kim)의 첫 출발은 2019년 1월, ‘더 블랙 페이퍼(The Black Paper)’로 명명된 산학 공동 프로젝트였다. 미술의 본질적인 재료와 표현 기법들을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s·유기발광다이오드) TV가 가진 블랙과 색 재현율의 장점을 통해 디지털 작품으로 구현했다. 김대환은 당시 자신의 모교인 서울대 미대 스승의 인맥을 적극 활용했다. 동양화와 조각, 도자기 등 장르별로 다양한 교수와 작가들은 LG디스플레이가 제공한 텔레비전 패널의 실제 크기에 맞춰 비주얼 콘텐츠를 제작했다.

ⓒ김대환 제공
반 고흐의 삶이 재구성된 ‘아를의 방’ ⓒ김대환 제공
ⓒ김대환 제공
2021년 런던 사치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모습 ⓒ김대환 제공

디지털 이미지로 구현한 반 고흐 전시 개최 

같은 해 김대환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과 공동으로 원화 이미지를 디지털 이미지로 구현한 전시회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를 4개월간 열었다. 김대환은 당시 공간 및 콘텐츠 기획을 담당했다. 반 고흐의 일생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구성, 그의 삶을 이해하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김대환은 전시장에 고흐가 말년을 보낸 프랑스 남부 지방의 지명을 딴 일명 ‘아를의 방(침실)’도 구성했다. 전시장 가운데 화면에는 고흐가 생애 마지막으로 그려낸 흔들리는 밀밭의 바람과 까마귀 소리가 음악과 함께 한 폭의 영상으로 흘렀다. 고흐가 살다 간 19세기 후반의 음악을 고흐의 조형 언어에 맞게 현대의 재즈와 전자음악으로 재해석했다. LG디스플레이가 협찬사로 참여했다. 디지털 이미지로 구현한 반 고흐 전시는 매년 포맷을 달리하며 전 세계를 순회 전시 중이다.

김대환은 서울 전시를 마치고 영국 RCA(Royal College of Art·왕립예술대학)로 유학을 떠났다. 런던 시내 켄싱턴과 화이트시티 캠퍼스를 오가며 ‘디지털 디렉션’을 전공했는데 계기가 독특하다. 그는 2018년 서울 고흐 전시 준비를 위해 암스테르담에 머물던 중 비행기로 1시간여 거리의 런던에 들러 별 의지 없이 RCA에 원서를 넣었는데 합격해 공부와 사업을 병행하게 된 것이다.

런던의 고물가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금융계좌를 갖기 위해서는 번듯한 주소지의 건물에 세를 얻어야 했다. 이미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선언했기에 무언가를 해야 했다. 한편으로는 RCA를 졸업할 즈음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영국에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가족이 그리워 영상통화를 했는데, 가족의 온기가 PC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를 통해 지구 반대편까지 전해지는 게 미술작품을 관람할 때의 감흥과 다르지 않다는 걸 체험하게 됐다.

김대환은 2021년 프리즈 본사를 찾아 자신이 느끼고 깨달은 디지털 스크린(캔버스)과 전시 계획을 프레젠테이션했다. 관건은 테크놀로지일 뿐인 디지털 디스플레이가 정보뿐 아니라 정서를 간직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느냐였다. 스토리를 전달할 매체로 무한하게 콘텐츠를 구성할 수 있는 텔레비전 디스플레이를 설정해 제안했다. 김대환은 디지털 화면 자체로 회화적 이미지와 메시지를 구현하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글로벌 미술계의 흐름도 보았다.

김대환 미술 기획자 ⓒ김대환 제공
김대환 미술 기획자 ⓒ김대환 제공

김대환은 프로젝트 팀을 꾸려 리더 또는 팀원으로, 여전히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urst)와 접촉하고, 전시 1주일 전까지 의견을 조율해 데미안 허스트의 최초 NFT 작품과 대표작을 《프리즈 런던 2021》 아트페어에 선보였다. 이 과정에서 김대환은 프리즈 측에 제안해 디지털 파트너십 파트를 메인 스폰서에 새로 추가했고, LG전자가 프리즈 아트페어에 독점적으로 참여하도록 중개했다.

데미안 허스트는 작가 및 기획자로서 광고계 재력가 찰스 사치(Charles Saatch)와 함께 ‘yBa(young British artists)’를 출범시켜 영국을 세계 주류 미술계로 편입시킨 인물이다. 영국이 근본 없이 세계 현대미술의 강자가 된 게 아니다. 2차 세계대전 후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1909~1992), 독일 태생 루치안 프로이트(Lucian Freud·1922~2011),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등 유명 화가들을 배출했다. 이들과 동시대 인물인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1922~2011)은 최초의 팝아트 작가로 불린다. 팝아트는 1950년대 중반 영국에서 태동한 후 1960년대 미국에서 꽃피기 시작했다. 김대환은 2021년 겨울 런던의 사치 갤러리에서 쿠사마 야요이와 뱅크시, 이우환 등의 작품을 디지털로 구현한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그는 브랜드 인큐베이팅 회사인 ‘비자인(BESIGN) 런던’ 대표 자격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리즈 런던 2021》에 선보인 데미안 허스트 작품
《프리즈 런던 2021》에 선보인 데미안 허스트 작품 ⓒ김대환 제공

데미안 허스트의 NFT 대표작에도 참여

김대환은 2023년 9월 열린 《프리즈 서울 2023》에서 작가로서의 면모도 드러냈다. 자신이 기획한 LG전자 올레드 라운지 부스에서 김환기 원작을 디지털로 구현한 작품을 선보인 것이다. LG전자는 2022년과 2023년 ‘프리즈 서울’의 공식 헤드라인 파트너를 맡았다. 《프리즈 서울 2023》 개최 한 달 후 김대환은 다시 런던으로 가 글로벌 경매사인 본햄스(Bonhams) 런던 본사 프라이빗 전시장에서 김성희 작가의 《재해석된 시간》 전시를 열었다. 통상 경매회사가 본경매 전에 작품을 선보이는 프리뷰 형식을 배제하고 연, 이례적으로 비상업적인 성격의 초대 전시였다. 김성희 작품을 애호하는 영향력 있는 컬렉터가 본햄스에 요청했는데, 김대환이 진행을 맡았다.

그의 회사 이름 ‘BESIGN’은 존재(BE) 자체가 한 영역에서 시그니처(SIGN)가 된다는 의미다. 그는 아트와 달리 디자인은 개념 및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고 말한다. 아트와 디자인 영역을 넘나들며 글로벌 역량을 갖춘 전시 기획자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