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현대중공업 산재사고”
  • 부산경남취재본부 박치현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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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 산재사고로 창사 이래 400여 명 사망
위험의 외주화는 여전히 진행 중
안전 불감증, 위험에 내 몰리는 노동자들

현대중공업에서 또 산재사고로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 들어서만 3건의 사고가 발생해 2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

21일 오전 4시쯤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 도장공정에서 노동자 A(50)씨가 대형 문에 끼여 숨졌다. 선박블록에 선행 도장 작업을 하다가 대형 문(가로 20m·세로 40m)에 끼면서 사망했다.

현장 노동자들이 산재사고로 숨진 동료의 명복을 빌고 있다ⓒ현대중공업노조
현장 노동자들이 산재사고로 숨진 동료의 명복을 빌고 있다ⓒ현대중공업노조

사측은 해당 구역의 작업을 중단했다. 노조는 산재사고의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며 23일 하루 동안 파업을 결의했다. 경찰과 고용당국은 현장에서 정확한 사고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이날 사고는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이 지난 20일부터 28일까지 현대중공업 전 사업장을 대상으로 정기 안전점검을 진행하던 중에 일어났다.

문제는 중대재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불과 5일 전인 16일에도 특수선 수중함 생산부에서 작업자 B(45)씨가 어뢰 발사관에 설치된 유압 작동문에 끼여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의식불명 상태다.

 

위험의 외주화 여전히 진행 중

그동안 현대중공업 산재사고의 원인으로 지적돼 온 위험의 외주화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22일에는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에서 ‘트러스(LNG선박 액체화물 적재함 공정의 발판 구조물)’ 설치 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 C(62)씨가 15m 아래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났다.

C씨는 현대중공업 1차 하청업체의 재하도급 업체(2차 하청) 노동자였다. 사고 당시 작업 현장에는 추락 방지용 안전 그물망도 없었고 최소한의 도구인 생명선을 걸 안전대조차 부실했다. 작업 안전 매뉴얼도 지켜지지 않았다. 특히 관리감독자도 배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위험한 작업을 강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보다 5개월 전인 지난해 9월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패널공장에서 작업 중 18톤 테스트캡에 목이 끼여 숨진 노동자 협착사고도 여러모로 비슷하다. 두 사고 모두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해당 작업 전체를 하청업체에 외주화하고, 재해자들은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없는 조건에서 위험한 작업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조가 반복되는 산재사고의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현대중공업노조
노조가 반복되는 산재사고의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현대중공업노조

노조는 반복되는 산재사망사고의 원인은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의 무한한 욕심이 위험을 감수한 외주화"로"이윤을 극대화 하는 과정에 다단계 재하도급으로 전가되어 노동자들의 안전은 무시되고 있다"고 분개했다.

현대중공업은 트러스를 조립하고 해제하는 작업 전체를 외주화 했다. 하청업체들은 속도전이 생명이다. 작업투입 시간당 인건비를 책정하는 방식으로 공사대금이 책정된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 하청 노동자들은 작업 기일을 맞추기 위해 짧은 시간에 쫓겨 무리하게 작업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산재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의 공기 단축 압박이 강할수록 하청노동자들은 그 만큼 더 위험에 노출돼 참사를 당하고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조선업종 산재사망사고 중 하청노동자가 84.4%를 차지하고 있다. 2014년부터 2019년 5월까지 조선업종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116명 중 98명이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조선업은 특성상 위험한 작업이 많다. 다단계 하청구조하에서 힘없는 하청 노동자들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원가 절감을 위해 하청 비율을 높여 왔다. 힘들고 위험한 작업을 하청업체에 맡겼다. 이 과정에 안전시스템도 무너져 산재사고로 이어졌다. 하지만 감독기관인 노동부는 소극적인 태도로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작업중지명령만 내릴 뿐 정확한 원인규명과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반복되는 산재사고가 이를 입증한다.

 

안전 불감증에 불러 온 산재사고의 악순환

현대중공업노조는 올해도 크레인 충돌사고를 비롯해 화상·감전·추락·끼임 등 수십 건의 사고성재해가 발생해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노조는 “사고가 날 때마다 형식적인 감독으로 몇 건의 사법처리와 과태료를 부과하는데 그쳤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1974년 창사 이래 지금까지 400여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숨졌다. 노조는 “중대재해에 대해 강력 처벌할 ‘기업살인법’을 만들어 기업이 안전보건을 최우선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전사적인 안전점검을 벌여 재발방지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안전을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산재사고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현대중공업을 중대재해사업장으로 분류했다. 재해율이 규모별 같은 업종의 평균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산재사고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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