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전대②] 철학·노선 경쟁 없는 보수의 한계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5 11:00
  • 호수 15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김’ 이후 박근혜로 다시 부활된 ‘보스 정치’
‘탈계파’ ‘새로운 보수’ 선언한 바른당 실험도 사실상 실패

계파 갈등은 보수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일까. 삼김(三金) 시대가 끝나고, 보수정치를 이끈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마저 정치권을 떠나며 한국 정치에서 보스 정치는 막을 내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빈자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채웠다. 박 전 대통령은 2004년 위기의 한나라당을 기사회생시키며 일약 보수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의원들은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이른바 ‘친박계’였다. 2007년 대선 경선에서 패해 ‘공천 학살’의 아픔도 겪었지만, 그럴수록 단단해졌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전성기를 누린 친박계는 ‘진박(眞朴·진짜 친박)’ ‘원박(元朴·원조 친박)’ ‘신박(新朴·새로운 친박)’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쪼개졌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구속 국면에선 각자도생의 길에 접어든다.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1998년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선거에서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박정희가 세운 경제, 박근혜가 지킨다’였다. 단순히 선거용 구호가 아니었다. 이후 21세기 보수정당 헤게모니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논리였다. 보수 세력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은 황폐한 나라를 되살린 신화적 존재였다. 새마을운동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군 ‘박정희 신드롬’은 끊임없이 작동했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기에 접어들수록 박 전 대통령을 통해 고도 성장기의 추억을 되살리게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7·4·7 공약(매년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 실현)’도 박정희 신드롬의 연장선에 불과했다.

자유한국당 선관위 회의가 열린 13일 국회에서 박관용 선관위원장과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황교안 후보, 오세훈 후보, 김진태 후보가 함께 참석해 진행되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자유한국당 선관위 회의가 열린 13일 국회에서 박관용 선관위원장과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황교안 후보, 오세훈 후보, 김진태 후보가 함께 참석해 진행되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그 후 보수의 논리는 단순했다. 기업을 살리면 경제가 살고, 그 효과가 국민에게 전파된다는 것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과거와 같은 고성장 전략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했지만, 아무도 이견을 제기하지 않았다. 대신 의원들은 빠르게 권력에 편승했다. 차기 공천권을 쥔 ‘보스’에게 줄을 서는 것만이 그들의 생존 방식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 전략으로 선회했을 때도 아무도 이견을 제기하지 않았던 모습이 이를 대변한다.

보수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바른정당이 탄생했다. 이들은 ‘따뜻한 보수’ ‘바른 보수’를 내걸며 중도층을 흡수하려 했다. 보수정당 내에서 개혁 성향을 지닌 의원들이 큰 물줄기를 만들려 했다. 이들의 노선 경쟁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로 보수 적통 경쟁에서 패하며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을 필두로 노선 변화를 시도했지만, 일련의 한국당 흐름은 김 위원장의 의도와 다르게 향하고 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한국당은 이번 전대를 통해 어떻게 달라졌는지 국민들에게 보여줬어야 했다”면서 “후보들 간에 노선이나 정책 방향을 말하지 않고 불필요한 논쟁만 되풀이하는 것이 한국당의 현주소”라고 비판했다.

 

※연관기사

[한국당 전대①] 짙게 드리워진 ‘박근혜 그림자’
[한국당 전대③] 오세훈 “김진태는 ‘강한 박근혜’, 황교안은 ‘정제된 박근혜’” 
[한국당 전대④] 황교안 25.3%, 오세훈 15.2%, 김진태 6.5%
[한국당 전대⑤] ‘유승민 복당’ 찬성 27.6% vs 반대 57.0%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