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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경협으로 한국 경제 5%대 성장 이끈다”

[인터뷰]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 “경협이 한국 경제 재도약 기회…제조업은 中企, SOC는 정부 중심 돼야”

김종일 기자 ㅣ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2(Wed) 08:19:02 | 1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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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가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5월 한·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월1일 신년사에서 대화 의지를 피력한 이후 북·미가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기까지는 70일이 채 안 걸렸다. 1993년 1차 북핵 위기 이후 벼랑 끝으로만 치닫던 한반도 정세는 숨 가빴던 두 달여 만에 변혁기를 맞게 됐다.

 

냉전의 마지막 장벽이 한반도를 가르는 휴전선이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냉전의 섬에서 해방되느냐 여부가 결정된다. 세계가 대담한 상상력과 창의적 해법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한다. 대전환의 폭풍에 휩쓸리지 않고 상황을 차분히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남북 간 경제협력 문제는 이념보다는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 경협은 핵심 의제에서는 빠졌지만,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진행되고 자연스레 경협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를 찾았다. 박 전 총재는 중앙은행(한국은행)과 정부(청와대·건설부·공공기관)에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굽이굽이마다 굵직한 족적을 남겨온 ‘경제계의 원로’다. 1936년생으로 올해 만 82세인 박 전 총재는 스스로를 ‘중도 실용주의자’라고 밝힌다. 그는 대전환의 폭풍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원로이면서도 냉전시대의 낡은 사고와 관행에 휘둘리지 않을 실용주의자다. 지난 대선 때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의 싱크탱크 자문위원장을 맡아 ‘문재인 노믹스(J노믹스)’ 뼈대를 구성하는 데 참여했다. 누구보다 J노믹스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 복잡한 현 상황을 차분히 내려다보며 진단할 수 있다.

 

박 전 총재는 “남북관계는 불신과 대결에서 평화와 협력으로 판이 바뀌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았다”며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는 외세 대결의 장에서 민족적 자각의 길로 회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엄청난 규모의 지하자원과 값싸면서도 양질의 노동력이 남한의 기술·자본과 결합한다면 무서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그는 “남북 경협이 한국의 마지막 남은 도약 기회”라고 강조했다. 남북 경협이 꾸준히 지속된다면 한국 경제는 지금의 3%대 성장률을 훌쩍 웃도는 5%대 성장을, 북한 경제는 당분간 매년 8~10%대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박 전 총재는 핵개발·경제건설 병진노선을 폐기하고 경제건설 총력 집중이라는 새 노선을 채택한 북한이 외국 자본을 시장에 맡기는 중국식 개혁·개방보다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외자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베트남식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고 봤다.

 

대북 투자는 민간이 주도하면서 정부가 뒷받침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대북 투자는 제조업과 SOC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 중소기업이 강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제조업은 기업 주도적으로, 많은 자본과 기술력이 필요한 SOC는 정부가 강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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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어떻게 보고 있나.

 

“이번 남북, 북·미 정상회담은 한국사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일련의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는 불신과 대결에서 평화와 협력으로 그 판이 바뀔 것이다. 한반도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전쟁 위험에 놓여 있었다. 미국 정계 거물인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은 작년 3월 ‘한반도가 6·25 전쟁 이래 가장 위험한 군사적 대결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도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2차 세계대전과 맞먹는 사상자가 나온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 2400만 명, 민간인 4900만 명 등 총 7300만 명의 사상자가 났다. 전쟁이 나면 한민족 멸망에 가까운 엄청난 희생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몇 달 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정말 다행이다.”

 

 

여전히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도 있다.

 

“많은 국민들이 아직도 북한이 과거처럼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의심한다. 당연하다. 북한은 체제유지에 핵이 꼭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지금까지 거짓말을 해 왔다. 하지만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이 완성된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완성된 핵을 써먹어야 한다. 핵과 미사일을 앞세워 체제 보장을 받고 경제건설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북한을 정말 신뢰할 수 있나.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로 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핵과 ICBM 개발이 완성됐기 때문이다. 북한 입장에선 체제 생존을 위해 핵과 ICBM이 꼭 필요했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완성된 상태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핵은 써먹을 수도 없는 것이고, 먹고살 수도 없는 것이다. 핵을 미국 요구대로 완전히 포기하더라도 핵 기술이 있으므로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다. 당연히 핵을 포기하고 경제를 건설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북한 민생문제가 극한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배급제가 평양 이외 지역에서는 사실상 폐지되면서 북한 주민들은 장마당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시장경제에 장기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정보통신도 과거처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남쪽과 세계 소식이 북한 주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있어 내부 불만이 심각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번엔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남북 경협은 어떻게 진행될까.

 

“북한에는 방대한 지하자원이 있다. 북한자원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가치로 북한에는 9700조원에 달하는 지하자원이 있다. 특히 우라늄·희토류·마그네사이트 등은 세계 1~2위 매장량을 자랑한다. 철과 금·석유·흑연·무연탄·아연 등도 세계 10위권 내의 매장량이다. 북한의 임금은 개성공단의 경우를 기준으로 볼 때 월 20만원 선으로 중국의 3분의 1 수준, 한국의 10분의 1 수준도 안 된다. 북한의 지하자원과 임금이 한국의 기술력·자본과 결합한다면 무서운 시너지 효과가 나올 수 있다. 이렇게 생산된 제품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수출될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대로 되면 북한 경제는 앞으로 10년 이상 8~10% 이상의 성장이 가능하다. 한국도 현재 3%대 성장률을 5%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남북 경협이 한국에 남은 마지막 도약 기회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북한 경제의 개혁·개방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외국 자본을 시장에 맡기는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과 정부가 주도적으로 외국 자본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 중 하나를 고를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어느 쪽으로 진행될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현재로서는 중국과 같은 대규모 경제 모델보다는 북한과 유사한 소규모 경제인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주체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한국의 대북 투자는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북한에 들어가야 한다. 이를 정부가 뒷받침하는 형태의 대북 투자와 경협이 이뤄져야 한다. 대북 투자의 핵심은 제조업과 사회간접자본(SOC)이다.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값싸고 양질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은 한국 중소기업들에 엄청난 경쟁력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북한에 들어가 공장을 세우고 자원을 개발하는 일은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 반면 SOC의 경우 실제 공사 집행은 우리 민간 기업들이 맡아서 해야겠지만 투자계획 수립, 공공투자, 자금지원 등은 정부 주도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구상’은 어떻게 평가하나.

 

“문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한마디로 말하면, 남북과 동북아의 상생 발전이다. 북한 경제건설을 우리가 뒷받침해 남북이 상생하는 경제발전을 이루는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 대륙과 연결시켜 세계로 뻗어나가겠다는 구상이다. 남측의 끝인 부산에서 북측의 끝인 나진을 잇는 환동해권 경제협력 벨트는 남북의 산업공간(나진·청진·원산·울산·부산 등)을 묶어 에너지·자원벨트로 특성화한다. 서해권 경제협력벨트 역시 남측 끝인 목포로부터 북측 끝인 신의주를 잇는 벨트상의 주요 산업공간(신의주·평양·남포·개성·서울·인천·군산·목포 등)을 묶어 산업·물류·교통벨트로 조성한다. 잘만 되면 동북아 경제협력을 넘어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까지 노려볼 수 있는 야심 찬 구상이라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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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상회담으로 통일이 앞당겨질까.

 

“나는 이번 정상회담을 ‘한반도의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본다. 한반도가 외세 대결의 장에서 민족적 자각의 길로 회귀하는 의미가 있다. 정상회담은 그 시발점이다. 북한은 지금도 시장원리가 지배하는 장마당이 민생의 바탕이다. 본격적인 개혁·개방이 이뤄지면 북한 경제는 급속도로 시장경제 체제로 재편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장경제가 남북한 통일을 가져오는 고리로 작동할 것이라고 본다. 남북 경협이 통일로 가는 큰 디딤돌이 되는 것이다.”

 

 

통일을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28년 전에 통일한 독일은 아직도 동서 간에 경제적 격차로 촉발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사회·경제적 갈등 등이 심각한 상태에 있다. 동독의 소득수준은 서독에 비해 월등히 낮고 실업률은 반대로 월등히 높다. 한국은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현재 남북한 경제력을 보면, 2016년 기준 총국민소득은 한국이 북한의 45배, 1인당 국민소득은 22배, 수출은 176배다. 한국의 이틀 수출이 북한의 1년 수출과 같다. 발전량은 23배, 원유 도입량은 276배다. 이렇게 큰 차이가 지속된 상태에서 남북 간 자유왕래가 허용되면 북한에서 일시에 700만 명이 남하(南下)한다는 연구조사가 있다. 북한 인구의 3분의 1이 남쪽으로 내려온다는 말인데, 양쪽 모두에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 전 남북 간 소득 차이를 좁혀놔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북한에 많은 지원과 투자를 해야 한다. 북한 방방곡곡에 개성공단과 같은 투자를 해서 북한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런 대북 투자는 한국 경제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통일을 대비한다는 의미에서도 꼭 필요하다.” 

 

 

[북·미 정상회담 진단과 전망 관련 기사]

 

▶ 비핵화로 가는 마지막 관문…미리 보는 北·美회담

▶ 송두율 “北 대화 상대론 오바마보다 트럼프가 적합”

▶ [르포] 한반도에 춘풍 불면 中 훈춘에도 훈풍 분다

▶ 정동영 “3차 남북회담은 냉전 해체의 현실화”

▶ 1·2차 남북 정상회담 의제별 합의 내용

▶ 남남 갈등 심했던 1·2차 남북정상회담의 暗

▶ 불어오는 남북 훈풍에 경협 ‘재개’ 기대하는 ‘재계’

▶ “남북 경협으로 한국 경제 5%대 성장 이끈다”

▶ “개성공단 재가동으로 북한에 응답해야”

▶ 독일 사례로 본 남북 정상회담 실천 방향

▶ 30대 수령 김정은, 아버지와 같은 듯 달랐다

▶ ‘정상 국가’를 향한 리설주의 정치학

▶ 숫자로 본 4·27 남북 정상회담

▶ 北·美 빅뱅 합의 해도 디테일에 악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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